최현미 논설위원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을 남긴 작가 박완서(1931∼2011)의 단 한 편의 역사소설 ‘미망’이 최근 재출간돼 인기다. 소설은 조선 말부터 6·25전쟁 이후 분단에 이르기까지 개성상인 전처만 집안의 일대기를 유장하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작가가 남편과 아들을 잃는 고통을 통과하며 쓴 작품으로, 소설 외적으로도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사준 워드프로세서로 썼다고 한다.

“내 작품 중 오십 년이나 백 년 후에도 읽힐 게 있다면 ‘미망’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에 시간을 건너 독자들과 새롭게 만나게 됐다.

‘미망’은 서점가에 불고 있는 90년대 소설의 재발견이라는 흐름을 잇는다. 1998년에 나온 소설가 양귀자의 ‘모순’은 올 상반기 교보문고 소설 1위를 차지한 뒤 여전히 상위권에 있다. 특별한 사건도 마케팅도 없이 독자의 선택으로 살아난 경우로, 입소문의 힘을 보여준다. 특히, 주 독자가 20대로 지금의 20대들이 소설 주인공인 25세 안진진에게 공감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지만 ‘세상은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라는 문장처럼 ‘삶의 모순’이란 시대를 넘어선 진리이기도 하다.

정영문의 1997년 등단작 ‘겨우 존재하는 인간’도 최근 재출간됐다. 90년대 화제작인 이 작품은 초판 발행 후 절판돼 희귀 도서로 고가에 판매되며 생명을 이어오다 이번에 정식으로 세상에 나왔다.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적인 삶을 의심하고 해부하는 작품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 셈이다. 이처럼 90년대 작품이 젊은층의 인기를 끌면서 알라딘 서점은 소설 베스트셀러에 ‘2000년 이전 소설’이라는 분류를 만들기도 했다.

90년대는 국제통화기금체제 전까지 풍요의 시대였고 디지털 이전의 아날로그 시대로 가요부터 패션까지 복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소설에서도 90년대 작품이 젊은 세대의 선택을 받는다니 시대와 세대를 넘어 정서적 교감이 작용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작품을 같이 읽으면서 만들어지는 귀한 세대 공감이다. 한국소설의 현대적 고전 목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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