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8월 29일 국치일 뼈저린 역사
이승만 김구 불굴의 抗日 투쟁
克日 앞장선 박정희와 김대중

대등한 한일관계 선열 꿈 실현
국민은 식민지 콤플렉스 탈피
親日 反日 선동은 시대착오적


조선은 전쟁 없이 식민지로 전락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군대 해산은 물론 외교권·사법권 등을 야금야금 침탈당한 끝에 1910년 8월 22일 ‘한국 황제는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에게 양여한다’는 조약이 체결되고, 일주일 뒤 공포됐다. 국치일(8월 29일)은 다 잘린 나무에 마지막 도끼질이 가해진 날일 뿐이다. 해방도 독립전쟁의 결실이 아니라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패망한 결과로 주어졌다.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 주석은 ‘백범일지’에 “왜적이 항복한다는 소식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광복군)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심경을 남겼다. 이런 사정 때문에 독립기념일 또는 건국일이 아니라 광복절이 됐고, 한일관계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파란만장한 한일 관계사를 돌아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확고한 반일 대통령이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전투 경험이 풍부했던 일본군 전역자들을 유엔군에 편입시키려 했는데, “국군은 일본군부터 격퇴한 다음 공산당과 싸울 것”이라며 거부했다. 부산 임시수도 시기임에도 평화선을 선포해 무력 충돌을 불사하며 동해를 지켰다.

일본은 6·25 특수에 힘입어 빨리 일어섰다. 전쟁 중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고, 미·일 안전보장조약으로 국방 비용을 줄였으며, 병참 기지 역할을 하면서 경제는 급성장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전쟁의 상처가 깊었다. 그나마 이 대통령이 ‘광인 전술’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교육에 투자해 문맹을 퇴치하고 고등교육도 대폭 확대했다. 역설적으로 4·19 혁명은 그런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5·16이 일어났던 1961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9달러로 125개국 중 101위로 최빈국 그룹에 속했으며, 북한은 320달러로 50위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기술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일 수교를 결단한다. 대국민 담화에서 “어제의 원수라도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위한 현명한 대처”라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느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느냐는 우리의 자세와 각오에 달렸다”고 호소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지지층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 국민과 문화의 저력을 믿는다”며 일본 대중문화 개방 결단도 했다. 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은 가장 친일적 대통령이다. 3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한일관계는 국력 측면에서 대등해졌고, 문화 국경은 사실상 사라졌다. 후쿠시마 원전 방류수 논란에도 상반기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444만 명으로, 하루 평균 2만5000명 가까이 된다. 일반 국민, 특히 미래 세대에게 대일 콤플렉스는 없다. 이승만과 김구의 항일, 박정희와 김대중의 극일 꿈이 실현된 것이다.

시대정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구한말에는 조선의 근대화 혁명,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항일 독립투쟁, 해방 뒤엔 자유민주 국가 수립, 6·25 시기엔 호국, 1960년대엔 빈곤 탈피와 산업화, 1980년대엔 민주화, 4차 산업혁명시대엔 경제·기술 일류국 만들기가 시대정신이다. 반일·친일의 개념과 정당성도 시대에 따라 변천한다.

21세기 정세는 식민지 때와는 상전벽해가 됐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비정상 국가에 맞서 일본과 안보·경제·기술 등 전방위로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밀정, 내선일체, 조선총독 등 교활한 구호와 근거 없는 괴담이 난무한다. 과거사를 잊어선 안 되지만, 미래의 발목을 잡게 해선 더욱 안 된다. 죽창가 배경은 동학농민전쟁의 우금치전투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농민군은 죽창으로 맞섰다.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살육이었다. 부적을 태워 마시고 총탄 피하는 주문을 외우며 돌격했다.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라면 해선 안 될 일이다.

뼈저린 피지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교훈을 얻고, 그 시대를 견뎠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과의 정도를 제대로 따져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할 때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평가 역시 당대에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해냈느냐가 최대 기준이 돼야 한다. 침소봉대 식의 닥치고 친일 몰이야말로 역사를 왜곡하고 제2 국치를 부를 사악한 매국 행태다.

이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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