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국내 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단 남자 국가대표 선수가 마지막 홀에서 우승을 확정하자 같은 유니폼의 대표선수들이 몰려들어 물을 부으며 축하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이 TV로 중계됐다. 다른 선수들은 쭈뼛쭈뼛하며 세리머니에 끼지도 못했다. 국내대회에서 국가대표 선수와 일반 선수로 나뉜 이 어색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참 불편했다. 20∼23일 경북 경산의 대구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31회 송암배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서도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출전했다. 이 대회는 국가대표선발전도 겸하고 있다. 국제대회도 아닌 국내대회에 왜 국가대표팀 유니폼이 등장하는 것일까. 대한골프협회는 문화일보의 질의에 “매년 11월 다음 해 국가대표의 선발을 알리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상비군이나 일반 선수들을 자극해 기량을 끌어올리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표현이 좀 과할지 모르지만, “억울하면 국가대표 되지 그랬어” 식의 ‘부러움 유발’이다. 이런 풍경은 국내 모든 스포츠 중에서 골프가 유일하다. 2024 파리올림픽 3관왕 양궁의 임시현도 한국체대 선수로 국내대회에 출전한다. 이에 대해 협회는 “특정 대회를 위한 ‘일시’ 국가대표가 아닌 ‘항시’ 국가대표제도를 운영해 국내 아마추어대회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대표가 되면 의류와 용품은 물론 최고 수준 코치진의 지도를 받고 프로대회에도 초청받는 등 일반 선수들과는 다른 특급대우를 받는다. 이미 ‘골프판 스카이캐슬’에 들어가는 셈이 된다. 평생을 함께할 ‘국대 출신’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은 덤이다. 국가대표를 향한 동기 유발과 잘하는 선수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경쟁력을 키운다는 협회의 취지에 충분히 이해는 간다. 모든 스포츠에서 선수는 실력만큼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가 실력 대 실력으로 대결하는 국가대표선발전을 겸한 국내대회에서까지 옷으로 엘리트와 비엘리트를 구분 짓는 것은 마치 신분제도 같아 씁쓸하다. 지금이 의복으로 품계를 결정하던 조선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동기 유발도 좋지만 10대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한 선수들에게 B급 선수라는 열등감을 심어주면서 선수생활을 계속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최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더헤븐마스터즈에서 우승하며 올해 2승을 챙긴 배소현도 우승 인터뷰에서 “주니어 때 잘하지 못한 선수”라고 자신을 평가하면서 “대기만성의 선수가 커 나가는 것도 지켜봐 달라”는 뼈있는 말을 했다. 그는 31세이다. 중·고교 때 국가대표를 못 했고, 2부투어를 거쳤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장타를 치고 있고, 이제 골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국가대표’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스포츠나 기술 등의 분야에서 일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되어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자기 나라를 대표하여 출전하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 태극마크를 달고 국내 골프장에서 뛰는 어린 대표선수들의 사기를 꺾자는 게 결코 아니다. 국가대표로서 태극마크가 빛을 발하는 공간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