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상임위원회 제도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과방위에서 다루는 여러 의제 중 하나일 뿐인 방송통신위원회의 활동이 전면적 여야 정쟁과 교착을 일으켜 과학기술과 정보망에 관련된 수많은 다른 의제가 방치되고 있다. 과방위는 방통위만 전담하는 국회 기관인 듯하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 과학기술과 IT산업은 국회에서 외면해도 되는 곁가지로 전락했나 하는 우려가 든다.
국회 상임위 제도는 입법 의제의 분화를 추구한다. 의원들이 노동 분업을 통해 전문성을 제고한다는 기능적 취지, 의원들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고 공(功)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정치적 취지를 위해서다. 동시에 상임위 제도는 입법 의제의 범주별 융합을 지향한다. 입법 의제마다 위원회를 만들 수 없으니, 같은 범주로 분류되는 입법 의제 간에 연결성·정합성을 기해 체계적·종합적인 입법을 하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17개 상임위는 각각 비슷한 성격의 여러 의제에 관한 관할권을 함께 행사한다. 그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과방위뿐만 아니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 외우기도 힘든 긴 이름의 상임위가 여러 의제를 다룬다.
문제는 한 의제에서의 정파적 대립으로 위원회가 파행을 겪으면, 다른 의제들도 악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22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과방위가 특히 그런 폐해의 대표 사례다. 3개월여에 걸쳐 회의 안건은 방통위로만 국한돼 왔다. 여당은 방송 정상화를, 야당은 방송 장악 저지를 부르짖으며 회의 때마다 심하게 충돌했다. 방통위 인사들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두둔 공방전을 넘어 탄핵소추, 탄핵 위협, 고발이 이어지는 험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의제는 상정조차 될 수 없었다. 야당 단독으로 과방위에서 가결한 법안 4건 모두 방통위 의결 방식을 바꾸거나 방통위 소관인 공영방송의 이사진을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방송 4법’ 모두 대통령의 재의요구(거부권 행사)로 인해 폐기됐다.
과방위의 피감기관은 방통위만 있는 게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주항공청,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있다. 소관 기관이 8개인 방통위가, 소관 기관이 각각 67개·2개·4개인 이 다른 기관들의 입법 의제를 다 막아도 될 만큼 중요한가? 방송이 권력 싸움의 도구로 쓰였던 과거를 생각하면 방송의 정치적 중요성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입법과 정책 차원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경시는 용납될 수 없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로선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에서 앞서가는 길밖에 없다. 더욱이 이 분야는 변화가 워낙 빨라 입법 지원과 조정이 시의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근래 과방위 회부 법안의 절대다수는 과학기술에 관련된 것이다. 인공지능(AI)기본법, 소프트웨어진흥법, 전기통신사업법,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 등에 더해 이공계 지원, 과학 연구개발(R&D), 플랫폼 자율 규제 등 과학기술의 기초 학문 및 산업 응용을 위한 여러 법안이 계류돼 있다. 방통위를 둘러싼 여야 전면전으로 이 법안들이 방치되거나 그 심의가 정파적으로 왜곡돼선 안 된다. 국회의원들이 하나에 관한 갈등으로 다른 것들을 모두 망쳐 버린다면 이는 명백한 책무 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