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한 뒤 추가로 술을 마셔 운전 당시의 정확한 음주 상태를 알 수 없게 해 위험운전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되면서도 음주운전 혐의는 피한 가수 김호중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는 의원들에 대한 극성 팬들의 겁박이 도를 넘고 있다. 김호중 열성 팬들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 국회 홈페이지 댓글 등으로 “낙선 운동을 하겠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욕설도 한다.

“전도유망한 한 청년의 앞길에 주홍글씨를 새겨 좌절과 고통을 안겨주는 법” “앞길이 구만리인 젊은 사람 인생 망치는 법” “이 법 만든 의원들은 사람 죽이는 악마” 등의 억지 항변과 입법을 위협하는 행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극성 팬덤 ‘개딸’을 빼다박았다는 지적이 많다. 사고 후 도주해 맥주 4캔을 사서 마신 뒤 외딴 호텔에 숨어 막내 매니저에게 허위 자수를 강요하는 등 죄질이 상당히 나쁨에도 무조건 감싸고도는 김호중 광팬들은 ‘문빠’ ‘조빠’ ‘개딸’ 등의 행태에서 용기를 배운 것 같다.

이들이 앞뒤 안 가리고 입법을 방해하고 나선 것은 ‘김호중 방지법’이라는 네이밍에 흥분한 결과로 보인다. 일부는 법안 이름을 ‘김호중 방지법’으로 착각한 것으로도 보이는데,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법률안’ 법안명은 물론 법안 내용 어디에도 ‘김호중’ 석 자는 나오지 않는다. 지레짐작해 오버했거나 털끝만큼이라도 김호중 폄훼 여지가 생기면 안 된다는 과잉 피해의식의 발로인지 모르겠지만, 정도가 심하다. 차라리 언론에 ‘김호중 방지법’ 대신 ‘술타기 방지법’으로 불러 달라고 호소하는 게 낫지 싶다.

술을 마신 운전자가 음주 측정을 거부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음주 측정을 피해 도주하거나 음주 사고 후 도주해 추가 음주를 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이런 입법 공백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김호중 사건 이후 대폭 늘었다고 한다. 이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내고 도주하거나 곧바로 술을 더 마셔 사고 시점의 정확한 혈중알코올 농도를 측정·유추하지 못하게 하면 현행 음주 측정 거부와 비슷한 형량으로 처벌하는 법안이 최근 다수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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