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는 한국계 교토국제고의 깜짝 우승은 큰 감동을 준다. 전국 3400여 개 고교가 참여한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중고생을 합쳐 160명뿐인 학교가 개교 이후 첫 우승을 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이 학교는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교토조선중학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 학생의 90%는 일본 국적이다. 한일 화합의 상징인 셈이다. 선수들이 경기 때마다 도열해 불렀던 한국어 교가도 화제였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교가가 NHK를 통해 여러 차례 전국에 생중계됐다. 재일교포 사회가 축제 분위기였던 게 공감이 간다.
교가에 나오는 야마토가 눈길을 끈다. 이는 일본이란 국호가 만들어지기 전 대화(大和) 또는 왜(倭)를 뜻한다. 교토 인근을 중심으로 했던 일본 최초의 통일 정권이다. 시기는 3세기 말∼7세기 중반으로, 백제와 신라의 영향력이 컸다.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유명한 ‘칠지도’를 하사했던 것도 이때였다. 천황 가계는 ‘일본서기’가 한 핏줄로 이어진 것처럼 조작했는데, 그래도 야마토 시대 전후의 기록은 삼국사기 등과 대체로 부합한다고 한다. 이 시기 천황들은 재위 기간이 대체로 짧다. 백제계인 소가(蘇我)씨와 신라계인 모노노베(物部)씨 간 치열한 권력투쟁의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31대 요메이(用明) 천황과 그의 아들인 쇼토쿠 태자의 성(姓)이 화(和)씨로, 백제 25대 무령왕과 그의 아들 26대 성왕 등의 왕성과 같다는 점이다. 물론 우연이 아니다. 2001년 당시 아키히토 일왕이 역사서인 ‘속일본기’를 인용해 50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언급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여인은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 태자의 후손으로, 성은 화(和)씨, 이름은 신립(新笠)이라고 기록돼 있다. 사실 야마토 시대 후반기 이후 천황가는 백제계가 주류였다고 한다(오순제 교수).
고대 한일은 이처럼 깊이 얽혀 있지만, 국내 강단 사학계는 식민사학에 갇힌 탓에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정치권은 최근 광복회 사태에서 보듯 또 친일·반일 몰이 정쟁이다. 교토국제고 학생들 보기도 부끄럽다. 이럴 여력이 있으면 선조들의 웅대한 발자취를 기릴 수 있게 한일 고대사부터 바로잡는 데 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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