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 정치부 차장

몇 번이고 ‘채상병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돌직구를 뿌려대던 더불어민주당의 볼 배합이 바뀌고 있다. 민주당은 급작스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제3자 추천 채상병특검법안’을 들고 와 변화구를 던지고 있다. 결정구가 번번이 타자에 의해 커트 되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를 균열 내는 이간질 전략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릴없이 던진 야당의 변화구지만, 여권은 익숙한 변화구 포물선에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거대 야당이 특검법 반복 발의 카드를 접고 한 대표를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사안 자체로는 공세를 이어가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놓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채상병특검법의 정식 법안명은 ‘순직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인데, ‘수사방해·사건은폐’의 주체가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실제 채 상병 순직 1주기(7월 19일)에 맞춰 열린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외압 의혹 제기자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대통령실로부터 (수사보고서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넣고 빼라는 연락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를 지켜본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반복해 말하듯, 이 사건에는 정략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며 “박 대령 역시 사실상 외압이 없다고 실토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도 박 대령 의혹 제기에 대해 “소영웅주의에 도취된 현역 장교의 그릇된 판단”이라고 꼬집었다.

야당의 특기는 프레임을 잡아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다. 그것도 안 되면 포기하지 않고 말꼬리라도 잡는다. 이번에도 그렇다. 야당은 여권의 약한 고리인 ‘윤·한 갈등’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일찌감치 ‘선 공수처 수사·후 특검’ 입장을 내놨다. 반면,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채상병특검법안 발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제3자 등의 수식어로 포장하긴 했지만, 결국 여당 대표가 대통령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법을 발의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용산은 제3자 특검법안에 대해 반응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윤·한 갈등 재발을 우려하며 ‘로키(low-key)’ 전략을 쓰는 것이다. 윤·한의 실제 관계가 어떻든, 정권 안정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균열하는 모습은 안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실의 속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여권 핵심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일 때와 여당 대표가 됐을 때 한 대표의 행동이 다를 것이라는 용산의 기대가 있다”고 했다. 내용·방식과 상관없이 한 대표에 의해 용산을 겨냥하는 특검법이 발의되는 순간, 용산도 이전처럼 소극적으로만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제는 한동훈의 시간이다. 제3자 추천 특검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에는 당내 친윤·친한 간 분열이 벌어질 게 뻔하다. 기반이 약한 원외 대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렇다고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기에는, 한 달밖에 안 된 대표 권위가 훼손되는 것만 같다. 야당의 변화구에 대처해야 하는 ‘한동훈의 정치력’이 제대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말이 여의도 곳곳에서 나온다.

손기은 정치부 차장
손기은 정치부 차장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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