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세계적인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가 나란히 한 장소에서 개최된다. ‘키아프리즈’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연중 가장 큰 장(場)이 서는 것이다. 미술 관계자들과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된 때를 기해, 미술관과 화랑들도 공들여 준비한 전시를 선보인다. 한마디로 서울이 거대한 미술관, 예술 도시로 변모한다. 여기에, 부산·광주 비엔날레까지 열기를 더해, ‘미술의 계절’을 뜨겁게 할 전망이다.
업계도 들썩이며 다소 긴장한 모습이다. 불황, 답보 상태인 미술 시장이 회복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라서다. 특히, 지난 5월 상반기 최대 미술 장터였던 부산아트페어의 성과가 미미했기에, 과연 ‘큰손’들이 돌아올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도 ‘미술 주간’ ‘미술 축제’ 등 연계 캠페인으로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큰손’은커녕 ‘작은 손’도 아닌 기자는 복잡한 심정이다. 미술 취재를 시작하고 한동안 ‘입덕부정기’를 겪었던 터다. ‘입덕’은 ‘들 입(入)’과 일본어 ‘오타쿠(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를 조합한 단어다. 무언가가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뜻. 입덕부정기는 그걸 애써 인정하지 않는 시기다. 예술품을 감상하고 예술가를 만나는 일은 설레고 감동적이었다. 다만, 그 세계와 ‘나’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자각도 반복됐다. 예술품의 가격과 내 월급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예술의 가치도 종국엔 ‘돈’으로 매겨지는 현장에 서면, 고양됐던 마음도 내려앉았다. “마음에만 담으려고요.” ‘미술 담당이면 그림 좀 샀냐’는 질문엔 늘 이렇게 자조했다.
“마음에 간직하는 게 시작이에요.” 미술계 한 지인의 말이다. 다양한 기관에서 미술 감상·투자법 교육을 하고 있는 그는 “그림을 마음에 담는 것도 ‘애호’이고, 그것이 ‘큰손’보다 소중하다”고 했다. 또, “그림으로 마음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신호”라고 강조했다. 즉, 세계적인 작가가 배출되고, 한국 작가가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미술 시장을 단단하게 받치고,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원동력은 일상에서 그림을 즐기는 ‘작은 컬렉터’ ‘개미 애호가’라는 것이다. 한 미술관 관계자 역시 “미술계에서 일해 보니, 예술가와 애호가의 진정한 상생은 ‘작은’ 그림이라도 옆에 두고 즐기는 ‘작은 손’들이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문득, 프랑스인들은 걷다가도 화랑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둔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시장엔 집 한 채 값 대작을 사는 ‘큰손’도, 몇 년 뒤 오를 작품을 고심하는 ‘아트 투자자’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트렌드와 상관없이, 그저 마음에 울림을 주는 그림을 발견해, 집에 걸어둘 수 있는 ‘보편적’ 애호가가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풍경이 흔해지는 것, 즉 모두가 미술 애호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경제적 안정과 문화적 수준, 국민 마음의 여유를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이는 개인의 힘만으로, 또 단시간에 이뤄지는 것은 아닐 터, 우리는 우선 ‘미술의 계절’로 가자. 발품 팔아 각자의 취향을 발굴·발견하며 ‘그날’을 준비해 볼 일이다. 28일 자 문화일보 19면에 가이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