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정보사령부 요원이 중국 정보요원에게 포섭돼 최소 30건의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그 대가로 1억6000여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정보사 요원의 이적·간첩 행위로 인해 해외에서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우리 ‘블랙’ 요원의 신상 정보 등을 포함한 2·3급 군사기밀이 중국 요원에게 넘어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점은, 해당 요원이 2017년부터 포섭돼 이 같은 활동해 왔는데도 올해가 돼서야 상황 파악을 했다는 사실이다.
정보 업무를 수행하는 요원의 해외 업무 수행에는 늘 위험이 따르고, 때로는 체류국 정부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정보사 해당 요원은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포섭된 후 중국 정보요원의 지시를 받고 각종 매체를 동원하는 수법으로 대담하게 간첩 행위를 해 왔다. 특히, 수사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여러 계정으로 클라우드에 접속하고 다양한 비밀번호 설정 및 대화 기록 삭제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국방부검찰단과 국군방첩사령부는 해당 요원을 군형법상 일반이적·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및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기소 단계에서 적용되지 않았다. 간첩죄를 적용하려면 ‘적(북한)’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북한과의 연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이제 간첩죄를 오늘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1953년 형법에 명시된 조항(제98조)을 개정해야 한다. 예컨대,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적국’에 한정하다 보니 우호 관계에 있는 외국에 군사기밀을 유출하더라도 간첩죄 적용이 어렵다. 또한, 적국이 아닌 외국 정보기관의 간첩 활동이 당국에 포착되더라도 간첩죄 적용이 쉽지 않다. 오늘날 선진국 중 간첩죄를 적국에 한정해 적용하는 국가는 드물다. 간첩 행위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무한대결의 시대에 현실에 안 맞는 법 조항으로 인해 국가안보가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지난해 7월 간첩 행위의 상대를 ‘적국(북한)’으로 한정한 형법 조항을 개정해 ‘외국 정부 또는 외국인 단체에 소속된 외국인’ 등으로 확대하려던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당시 법원의 우려로 법사위 통과가 무산되면서 중국·러시아 등의 외국인 간첩들이 우리나라 국가기밀을 수집하는 등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각국 정보기관원들이 들어와 온갖 정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번 정보사 요원에 의한 군사기밀 유출 사태를 계기로 간첩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현행 간첩죄 조항 개정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아울러 최고의 보안이 요구되는 정보사의 허술한 보안 체계 실태가 이번 기밀 유출 사건으로 고스란히 드러나서 이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도 요망된다.
한편, 지난달 미국 연방 검찰이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하면서 우리의 대미 정보활동도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이에 대한 시정 조치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정보사 요원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계기로 이적·간첩 행위에 대한 제도 정비와 철저한 보안 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금이 이들 모두를 바로잡을 적기이다. 더 미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