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재개봉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은 주인공 알렉산더가 시든 나무 한 그루를 다시 심는 데서 시작한다. 누군가 나무에 물을 주길 바라면서.
요즘 한국 영화계는 말라 비틀어져 죽기 직전인 나무 같다. 당장 새로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CJ ENM을 비롯해 국내 5대 영화 투자배급사가 준비 중인 영화는 10편가량에 불과하다. ‘창고 영화’들이 소진된 후 내놓을 신제품이 거의 없단 얘기다. 흥행 실패가 일상이 되다 보니 검증된 공식에 의존하는 경향은 심해졌다.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투자사를 찾아가면 “‘서울의 봄’이나 ‘파묘’ 같은 건 없어요?”라고 한다는 얘기가 괴담처럼 돈다.
극장은 점점 가수들에게 의지한다. 임영웅의 공연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이틀 간 7만 명 넘게 봤고, 예매율은 줄곧 1위다. 매출액은 더 쏠쏠하다. 일반관보다 관람료가 비싼 특별관에서 주로 상영되기 때문이다. 공연 실황 영화는 8월까지 14편 개봉하며, 이미 지난해 기록(13편)을 넘어섰다.
상업영화계가 영화판을 ‘손절’한다면, 예술영화계는 검증된 고전을 들여오는 것을 돌파구로 삼았다. 타르콥스키 외에도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세 가지 색’ 3부작), 장 뤽 고다르(‘국외자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마지막 황제’), 이마무라 쇼헤이(‘복수는 나의 것’) 등 명감독들의 명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권장할 방안은 아니다. 공연 영화, 고전 영화의 입지가 커질수록 현재의 영화는 움틀 공간이 줄어든다. 제작자, 투자자, 관객 모두가 손해 보지 않으려다가 공멸할지 모른다.
타르콥스키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란 마음으로 죽음을 앞두고 ‘희생’을 남겼다. 영화의 마지막 알렉산더의 아들 고센이 나무에 물을 주는 대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희생’ 역시 지금은 무성한 열매가 맺힌 나무이지만, 처음엔 싹을 틔울지 불투명한 씨앗이었다. 지금 씨앗을 심고 물을 줘야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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