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헌법재판소가 지난 29일 2031년부터 2049년 사이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규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정했지만,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감축 계획을 제시하지 않아 기후위기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했다는 것이다. 헌재 판결로 정부는 더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헌재 판결이 나오기 직전, 경기 하남시가 한국전력의 동서울변전소 증설사업 신청을 주민 반대를 이유로 기각했다. 동서울변전소는 동해안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하기 위해 한전이 약 7000억 원을 투자해 증설하는 설비다.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 등으로 증가하는 수도권 전력 수요에 대비하려는 한전의 계획이 난관에 부닥친 것이다.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 위주로 전력 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변전소와 송배전망의 적기 확충이 시급하다. 전기자동차,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증설 등으로 전력 수요가 계속 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나 원전을 증설하더라도 송배전 시설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하남시의 전력망 갈등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08년 경남 밀양의 송전탑 건설은 주민들 반대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으며, 충남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무려 12년6개월이나 준공이 지연되고 있다. 또,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사업은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탄소 감축을 위해 수도권의 석탄발전소 설비가 폐쇄되면 강원·영남·호남 등지에서 더 많은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 향후 30년간 과거 60년 동안 구축한 전력망 2배 규모의 증설이 필요해 사회 갈등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력망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한전)이 아닌 정부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한다.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서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제시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로 주민과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전력망확충위원회’가 송배전 시설 관련 갈등 해결을 총괄토록 하는 특별법이 국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돼야만 하는 이유다.

전력망을 계획하고 구현하는 방법도 혁신해야 한다. 주민 몰래 입지선정위원회를 꾸리고,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을 배척하면서 전력망 증설을 강행하면 갈등은 늘어난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순서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는 발전 설비 계획을 마련한 뒤에 전력망 계획을 수립했다면, 앞으로는 송배전망 계획을 설비 계획에 앞서 진행하거나 최소한 병행할 필요가 있다.

입지 선정 단계부터 주민을 참여시키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과의 소통을 늘리는 ‘고양된 민주주의’(enhanced democracy)로 주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경제적 보상도 특별지원사업비 명목으로 주민을 매수하고 지역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주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혜택 방안을 끌어내야 한다. 글로벌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도 사회적 갈등 해결 방식을 선진국 레벨로 격상해야만 송배전망 인프라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갈등의 악순환을 끊고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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