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창무의 Deep Read - 전세사기특별법 讀法
文정부, 다세대주택에 대한 징벌적 과세로 시장 교란… 무자본 갭투자 ‘사기범’ 양산 도와
피해자 지원책만으론 사기 근절 못해… 정책적 실패 막아내는 시장정상화 방안 마련돼야

문제는 이 법안만으론 전세사기를 근원적으로 막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다세대주택 보유자를 다주택자로 취급해 이를 ‘죄악시’하고 징벌적 과세를 해나가는 지금의 정책이 계속되는 한, 시장의 교란에 의한 전세사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법안 통과의 의미
무엇보다 여야 간 극도의 대치 국면 속에서 중요한 민생법안 중 하나인 전세사기특별법이 협상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건 의정 협치의 주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 법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피해 세입자에게 장기 공공임대하거나 경매차익을 지원하는 정부안을 골자로 한다. 피해자들이 LH가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에서 기본 10년 동안 거주하고, 더 거주하기를 원할 경우 일반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차료를 내고 10년간 추가로 거주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에서 거주하길 원치 않는 피해자에게는 ‘전세임대’를 지원한다. 피해자 인정요건인 보증금의 한도도 3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상향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피해지원위원회를 통해 추가적인 2억 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번 타협안은 또 정부의 경매 낙찰가로 해당 건의 시장가치가 확정된 이후 지원 금액을 결정하자는 정부안을 야당이 수용하는 대신, LH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원하는 곳에서 ‘전세임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야당 협상안을 여당이 받아들임으로써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이 법안으로 피해자 상당수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경매차익이 발생하지 않는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보장 방안 등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어 보다 세심한 지원 방안이 추가로 고민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을 넘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전세사기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세사기 문제가 전세제도의 태생적인 문제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선택한 잘못된 정책들의 집합으로 발생한 인위적인 재해일 수 있다는 성찰이 필요하다.

◇다가구와 다세대
전세사기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인 2022년부터 폭발 상태에 이르렀다. 과거 인구 증가기나 경제 성장기에는 큰 문제 없이 작동했던 전세제도는 왜 인구 축소기와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문제가 됐을까. 이는 대한민국에서 주택과 부동산 문제로 씨름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이 성찰해야 할 질문이다. 2022년 말 미국발 금리 급등으로 초래된 주택가격 급락이란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충격이 있었지만 이후 만연한 전세사기 발생이 과연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였을까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그 실마리를 제공하는 통계는 서울시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의 ‘매매가지수’ 추이와 ‘전세가지수’ 추이이다. 둘 다 서민·청년층을 위한 소형 민간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다가구주택은 건물 한 동에 여러 거주 가구가 담기지만 소유단위로는 한 채이다. 반면 다세대주택은 역시 건물 한 동이지만 그 안의 개별 거주 가구들은 각각 소유단위로 등기된다.
예컨대 8가구의 다가구주택 소유자는 1주택자, 8가구의 다세대주택 소유자는 8채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가 된다. 이러한 차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 강화에 따른 영향이 두 가지 주택 유형에 차별화되면서 발생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조사가 아닌, 공개된 실거래가 자료로 서울시 전체의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의 매매가지수와 전세가지수를 산정하면 안정성에는 한계가 있으나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2017∼2022년)의 5년 동안 연립 다세대는 50% 가까운 매매가 상승률을, 단독 다가구는 80%의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세가 상승률은 두 유형의 주택 모두 30% 남짓으로 비슷하게 집계됐다.
◇주범은 과잉규제
전세가 상승률은 같은데 매매가 상승률은 왜 이런 격차를 보이는 것일까. 그 해답은 다주택에 대한 규제 강화 여파로 다세대주택에 대한 구매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억제된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주요한 민간임대주택 공급자이자 투자자로서 안정적인 자산을 보유해온 다주택자들이 빠져버린 시장에서 정상적인 매매가를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초저금리 시기 가격 급등으로 전세가/매매가 비율이 하락해 갭투자 여력이 약해진 아파트와 달리 빌라시장은 신축이 급증하면서 오히려 전세가/매매가 비율이 80%대에서 90%를 넘어서는 무자본 갭투자 여건이 조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발 고금리 여파로 시작된 매매가 급락은 순식간에 서울 시내 일부 빌라들의 전세가/매매가 비율을 100%가 넘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전세가 하락은 역전세 문제를 심각하게 발생시켰다. 결국 신규 임차인을 구하기도 힘들어졌고, 신규 임차인에게서 받은 전세금으로 퇴거 임차인에게 돌려줄 전세금도 마련하지 못하게 됐으며, 해당 빌라를 팔아도 전세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깡통전세주택으로 전락하게 됐다. 안정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는 임대인이면 단기적인 상황을 견딜 수 있었겠지만, 무자본 갭투자로 레버리지가 과도하게 연결된 빌라왕이 아닌 일반 소규모 투자자들도 전세사기범이 됐다.
이와 함께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신축 아파트의 로또화, 그 로또 아파트를 얻기 위해 필요한 무주택자 청약조건은 청년가구들이 해당 빌라 구매가 가능한 자산을 불안한 전세금으로 지불하게 하는 불합리한 선택을 늘려 합리적 구매 수요를 위축시켰다. 청년층에 대한 정책적 금리의 전세대출 확대는 그런 선택을 더욱 손쉽게 만들었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내재화하지 못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무분별한 확대는 전세사기의 위험에 눈을 가리게 만들었다.
◇근원적 해법
결국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전세사기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천재라기보다는 불합리한 정부의 인위적·정책적 선택의 부작용이 결합해 발생한 ‘퍼펙트 스톰’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방안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전세사기의 여건을 만들어내는 정책적인 실패 요소들을 거둬들이는 시장 정상화야말로 가장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해법일 것이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 아시아부동산학회장
■ 용어설명
‘역전세’는 전세 시세가 하락해 신규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액이 기존 세입자에게 되돌려줘야 할 금액보다 적어지는 것.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지거나 부동산 매매 시세가 떨어질 때 발생.
‘갭투자’는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고른 후, 주택 매입 전후로 바로 전세 세입자를 구하는 것. 전세가율이 높을수록 투자에 들어가는 자본이 적어짐.
■ 세줄 요약
법안 통과의 의미 : 여야 협치의 주요 사례인 전세사기특별법 통과로 피해자 상당수가 일상을 회복하게 될 것으로 기대됨. 앞으로 피해자 지원책을 넘어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세사기의 근원적 차단 방안이 강구돼야.
주범은 과잉규제 : 다세대주택은 한 동만 소유해도 다주택자로 취급돼 과잉 규제를 당했음.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다주택자를 죄악시해 규제가 강화됐고, 구매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억제되면서 갭투자와 역전세 발생.
근원적 해법 : 전세사기 사태는 제도의 태생적 문제에 의한 천재가 아닌 정부의 인위적·정책적 선택의 부작용이 결합해 발생한 인재임. 정책적인 실패를 성찰하고 시장 정상화 방안을 내놓는 근원적 해법을 도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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