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철환의 음악동네 - 오아시스 ‘돈트 룩 백 인 앵거’
DJ가 차분하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시를 읽어주면 9월이 온 거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가을날에 더없이 어울리는 이 시의 제목은 그냥 ‘가을날’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불면에 시달린 사람들이 묻는다. ‘언제 더위가 멈추고 가을이 정착할까.’ 우주의 질서를 거스른 건 더딘 계절뿐 아니다. 국제뉴스에선 포옹이나 포용 대신 포탄이 빗발쳤다. 이스라엘 하마스,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뜨면 그 나라 별(장성)들이 일제히 상대를 비난한다. 오래전 밥 딜런이 던진 질문에 바람(Blowin’ in the wind)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야 전쟁은 종지부를 찍을까.’(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폭염이 가을을 막고 버티던 8월 마지막 화요일 영국 BBC에 이런 청량한 기사가 떴다. ‘총성이 멈췄다. 별들이 정렬했다. 긴 기다림이 끝났다.’(The guns have fallen silent. The stars have aligned. The great wait is over) 마침내 전쟁이 끝난 건가. 아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이 뉴스의 진원지는 바로 오아시스(Oasis)였다.
음악동네에서 오아시스는 이름과 달리 불화의 아이콘이다. 소개 문구는 ‘영국 브릿팝의 전설’이지만 밴드의 주축인 갤러거 형제(노엘과 리엄)는 툭하면 다투는 ‘문제적 형제’다. 말다툼하다가 동생(리엄)이 형(노엘) 머리에 자두를 던진 이후 결별의 시간은 길었다. ‘분노의 포도’(1939·존 스타인벡)가 아니라 분노의 자두였던 셈이다. 그놈의 자두 때문에 해체(2009)한 지 무려 15년 만에 극적으로 화해를 선언한 거다. 하지만 TV 앞에서 설레며 형제의 귀환을 맞는다면 낭패다. 발표문 뒤에 이렇게 토를 달았기 때문이다. ‘와서 보라. 방송되지 않는다.’(Come see. It will not be televised)
업계에선 숫자가 깡패다. ‘제2의 비틀스’로 불린 오아시스는 전 세계적으로 9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달성했다. 정규 음반 7장 모두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오늘은 1996년에 발표한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를 선곡했다. 영국 작가 존 오스본(1929∼1994)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에 부정사(Don’t)를 얹은 게 제목이다. 이 노래는 동생(보컬) 대신 형(기타리스트)이 부른 걸로도 유명하다. 사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도저히 화가 안 풀릴 때 하소연하듯이 혹은 절규하듯이 세 번 정도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내가 왜 그렇게 흥분했나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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