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경제부 부장

지난 8월 27일 내년 예산(정부 안)이 발표됐다. 그러나 올해처럼 이듬해 예산이 여론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한 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내년 예산에 쓸 돈이 별로 없어서 눈에 띌 만한 사업이 많지 않은 게 주요인인 것 같다. 나라에 들어올 돈을 살펴봐도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내년 예산안 얼개를 살펴보면, 총지출 증가율은 올해(2.8%)보다 다소 높은 3.2%로 편성됐다. 총수입 증가율은 6.5%지만, 국민연금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입 증가 등이 포함된 세외수입을 뺀 국세수입 증가율은 4.1%에 머물렀다. 내년 경상성장률(물가상승을 포함한 성장률) 전망치가 4.5%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총지출 증가율이나 국세수입 증가율, 어느 측면에서 봐도 ‘긴축 재정’이라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 더욱이 총지출 중에서 법률 등에 따라 반드시 써야 하는 의무지출을 제외한 재량지출 증가율은 0.8%에 불과하다. 지출은 별로 늘지 않았지만,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국내총생산(GDP)의 0.8%포인트(81조3000억 원) 증가하고, 나라 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 폭도 올해보다는 작지만 GDP의 2.9%(77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진보 단체는 내년 예산안이 발표되자마자 “윤석열 정부 감세 때문에 나라 수입이 줄었고, 그래서 쓸 돈도 없어진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념 공세 측면이 강하기는 하지만, 현 상황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을 쉽게 배척하기도 어렵다. 국세수입 시계열(時系列)을 보면, 2022년 실적치가 395조9000억 원이었는데, 내년 전망치는 382조4000억 원으로 감소한다. 나라가 성장(경상성장)을 하면 국세수입은 느는 게 상식인데, 오히려 줄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성장을 해도 국세수입이 별로 늘지 않는 ‘불임(不姙) 경제’가 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 진보 단체의 주장은 단순하다. 감세를 하지 말고 증세를 해서 국세수입을 늘리고, 그 돈으로 저소득층 복지 등을 위한 대규모 확장 재정을 편성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에 남긴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주장에 상당히 무리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년 예산에 반영된 나라 살림의 형편은 보수적인 현 기조를 이어나가는 것이 능사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 조세부담률(총조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19.1%)보다 낮은 18.9%다. 국민부담률(총조세와 사회보장성기여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26.8%에서 내년 26.7%로 하락한다.

선진 복지국가로 진입하고 있는 나라에서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낮아지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확장 재정 대(對) 긴축 재정’ ‘감세 대 증세’ 등 예산 편성의 철학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 소규모 개방경제이고 남북이 대립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재정 건전성 유지가 ‘제1의 원칙’이 돼야겠지만, 동시에 선진 복지국가의 틀도 공고해질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예산 편성의 철학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조해동 경제부 부장
조해동 경제부 부장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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