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가격 오르고 금리 제자리 인허가 물량도 적어 불안 증폭 42만호 8·8 대책도 별무효과
공급대책엔 내재적 한계 뚜렷 지연 또는 무산 경우도 수두룩 적시 법제화 뒷받침이 대전제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근 정부가 발표한 8·8대책의 배경에는 강남 3구와 용산 등 서울은 물론 수도권 선호 지역 주택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있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마이너스였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6월 0.56%, 7월 1.19%로 상승 폭을 키워 전고점(前高點)을 넘어선 지역의 숫자도 점차 늘고 있다. 공급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 가격 상승의 기대심리가 진정되지 않고 가격 불안정에 대한 염려도 증폭돼 경기 진작을 위해 필요한 금리 인하도 적기에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주택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매우 많다. 크게 보면 수요와 공급이지만, 구체적으로는 금리와 물가 등 거시경제 변수는 물론 부동산 및 금융 관련 각종 제도 및 규제, 심리적 요인, 적절하고 실천 가능한 공급계획의 수립과 집행 등 무수히 많다. 장래 주택 공급의 선행지표로 볼 수 있는 인허가 물량은 2017∼2022년 중엔 평균 54만 호였으나, 올 상반기에는 15만 호에도 못 미쳐 이대로 가면 올해도 인허가 물량은 최근 10년래 최소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급 부족을 주택 가격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할 만하다.
이러한 인식에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주택 수요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으로 나온 것이 8·8대책이다. 그린벨트 해제와 3기 신도시 등으로 21만 호를 신규 공급하고, 정비사업을 가속화해서 21만7000호를 조기에 공급하며 비아파트 매입임대주택의 사업 규모를 종전 12만 호에서 4만 호 더 늘리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주택 가격이 불안하면 늘 신규 택지를 확보하거나 규제를 완화해 주택 공급을 늘리고 주택 관련 대출을 죄는 등 수요를 억제하는 대책을 발표해 왔다. 이러한 행태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됐음을 상기한다면 8·8대책이 새삼스러울 건 없다. 시장의 반응도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시장의 반응은 기본적으로 실현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공급대책 자체가 갖는 내재적 한계에 기인한다.
사람들이 효과적일 것으로 믿는 공급대책만이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계획 물량이 엄청나서 그 정도면 주택 가격이 안정된다고 누구나 믿을 수 있거나, 아니면 탄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어 공급계획이 확실히 실현될 수 있다고 누구나 믿을 수 있거나 둘 중의 하나는 전제돼야 한다. 엄청난 물량 공세의 예로 1990년대 초의 200만 호 주택 건설을 들 수 있다. 1980년대 거품경제의 영향으로 토지·주택 등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 거품과 만성적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같은 수도권 신도시에 90만 호, 지방에 110만 호 등 총 200만 호의 주택을 수년 내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90만 호는 당시 수도권의 주택 수 245만 호 중 약 37%에 해당하는 엄청난 물량이었다. 건자재 가격의 상승 등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주택보급률을 높이고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반전시켜 꽤 오랜 기간 주택 가격을 안정시킨 게 사실이다.
8·8대책에 포함된 신규 공급계획 42만7000호가 결코 적은 물량이 아닌데도 시장의 반응이 뜨겁지 않다. 그것은 조속한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박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급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차가 필요하다. 상식적인 수준의 시차는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장래에 대한 기대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정책 효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특히 대규모 택지인 경우에는 주민 동의, 보상금액의 결정, 인허가 등 사업 추진 과정에서 뜻밖의 문제가 발생해 예상보다 훨씬 지연되거나, 심지어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책효과를 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책효과에 대한 회의가 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주택 공급 대책의 많은 부분은 법제화를 전제로 한다. 도심 공급의 핵심인 재건축·재개발을 조속히 진행시키려면 관련 법안이 뒷받침돼야 한다. 올 1월에 발표된 안전진단 완화, 소형주택 구입 시 세제 혜택 등 후속 입법은 별 진전이 없다. 하지만 이번 공급대책의 법제화만은 적시에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