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정치부 차장

국회는 지난달 28일 본회의를 열고 간호법 제정안 등 법안 28건을 합의 처리했다. 이에 앞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모두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실상 제22대 국회 첫 입법 성과다. 특히, 간호법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후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함께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가 22대 국회에서 여야 협의를 거쳐 입법이 완료된 법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정에 박수를 보내기는 어렵다. 느긋하게 놀다가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하는 학생 같은 모습을 국회가 또다시 보여줬기 때문이다. 간호법은 지난해 5월 30일 국회 재의결에서 부결됐고, 22대 국회 임기를 시작하고 두 달 가까이 지난 7월 22일에야 법안심사소위가 다시 열렸다. 여야는 PA 업무 범위 규정 등 쟁점을 확인했으나 두 번째 소위까지는 또 한 달이 걸렸다. 8월 22일 소위에서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간호법 제정안 처리는 정기국회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파업을 예고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직종 간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위해서는 간호법 제정이 필요했다. 급해진 여야는 27일 저녁 소위를 열어 합의안을 도출했고, 간호법은 28일 불과 반나절도 안 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 본회의를 차례로 통과했다.

절차는 뒷전으로 밀렸다. 제정법은 청문회나 공청회를 개최해야 하지만, 22대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생략됐다. 이른바 ‘일하는 국회’를 위해 법률안을 심사하는 소위원회는 매월 3회 이상 개회한다고 국회법에 규정돼 있지만, 이번에도 ‘훈시 조항’에 그쳤다.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법사위에 회부된 법률안은 5일이 지나야 상정할 수 있다. 간호법은 제정안인 데다, 부칙을 통해 의료법 조항을 상당수 바꾸기에 숙려 기간을 둔 취지에 딱 부합하지만 ‘위원회 의결’이라는 예외 조항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2018년 윤창호 씨가 음주운전 차량에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윤창호법’은 졸속 입법의 대명사로 평가받는다. 상습 음주운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국회가 여론에 떠밀려 급하게 법안을 처리한 결과다.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소위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상정, 심사, 처리하는 데는 불과 8일 걸렸다. 당시 법사위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보면 대법원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시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을 깊게 고민하지 않은 조급함은 결국 헌법재판소의 세 차례 위헌 결정으로 귀결됐다. 헌재는 음주운전의 재범을 산정하는 기한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위헌으로 판단했고, 윤창호법은 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간호법이 윤창호법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벼락치기를 반복한다면 예상치 못한 실수가 나타날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조성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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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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