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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아버지 박래성(1932∼2021) <하>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제한이 조금 완화되었다. 언니, 형부와 함께 대면 면회를 신청하고 기차표도 예매해 두었다. 임종 면회란다.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란 말인가. 침착하게 그리고 담담해지기로 했다. 면회 예정 하루 전, 늦은 밤에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면회를 앞당겨 와도 된단다. 상태가 위중한 모양이었다. 가까이에 사는 두 오빠한테 연락해서 밤늦게라도 빨리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둘째 오빠는 벌써 부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병원에 근무하는 고향 친구에게 전화했다.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곧 화면에 아버지의 병실이 나오고, 큰올케가 면회 중이었다. 올케가 아버지의 귀에 대고 늦게 찾아서 죄송하다며 눈을 좀 뜨라고 해도 아무런 기척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산소호흡기를 하고 말없이 숨만 고르고 계셨다. 우리가 내려갈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도 했다. 그러고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전에 예약한 기차를 탔다.

2021년 10월 26일 오전 기차가 출발한 지 삼십 분쯤 지났을까. 큰오빠가 아버지 부고를 오 남매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아버지는 더 기다릴 수 없었는지 자식들의 임종도 없이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나마 전날 밤늦게라도 두 오빠가 다녀왔으니 잘했다 싶었다. 나는 앞이 캄캄하고 가는 내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코로나19 속에서 요양병원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 아팠다. 고생만 하시고 황망히 떠나시다니….

아버지는 항상 근엄했지만, 내가 학생 시절엔 나의 앞날을 걱정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큰일을 결정할 때면 언제나 의논하고 어려운 것이 있어도 되도록 도와주셨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작 하룻밤을 병실에서 간호했다. 폐렴으로 물을 먹을 수 없는 단식 기간이어서 거즈로 물을 적셔 입술에 갖다 댄 정도였다. 그때 물컵을 빼앗아 물을 마시려는 그 강렬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살아야겠다는 생의 마지막 손짓 같았다. 간호사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물을 마시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는데 한순간에 내려놓다니….

세월은 거스를 수 없다지만 그간 못다 한 부모님의 은혜는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이제 엄마 곁에서 편히 쉬실 수 있기를 빌어드릴 뿐이다. “지실아~(○室 : 경상도 지역에서 딸이 결혼하면 그 남편의 성을 따서 부모가 부르는 호칭) 니거는 별일 없나?” 오늘도 아버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막내딸 숙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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