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냉전 종식 요인은 명확 對蘇 봉쇄·억제와 美 체제 매력 안팎 압력 작용해 공산권 붕괴
北은 공세적 핵전략 적극 추구 강력한 3축 체계 구축 급선무 범국민적 안보 공감대도 중요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안보 연구가 배리 포즌(Barry Posen)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역사상 국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군사전략을 공격과 방어, 그리고 억제전략의 유형으로 구분한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격전 방식으로 유럽을 초토화시켰던 아돌프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전형적인 공격전략을 추구했고, 그에 반해 마지노선에 집착했던 프랑스는 방어전략의 대표적인 사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핵무기의 등장 이후 국제안보 연구자들 사이에는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은 공격이나 방어가 아니라, 억제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찰이 공감대를 이루는 것 같다. 버나드 브로디 등에 따르면, 핵시대에 국가들이 공격전략을 취한다면 거대 도시나 국가의 절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최선의 전략은 상대국의 핵공격을 저지하는 억제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상대국의 핵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을 충분히 갖춰서, 설령 핵공격을 받더라도 제2차 가격능력을 동원해 상대국을 공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다면, 핵전쟁 억제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냉전시대 소련과의 장기간 대결 국면을 맞아 미국이 일관되게 추진한 군사전략은 바로 이러한 제2차 가격능력의 건설을 통한 억제전략이었다.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대량보복전략에 따라 핵전력 건설에 중점을 뒀고, 존 F 케네디 행정부는 재래식 도발에도 대응해야 한다는 유연반응전략에 따라 특수전 전력을 포함한 재래식 전력 증강에 역점을 두기도 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스타워즈와 같은 첨단무기 체계 건설을 야심적으로 추진하면서 소련 국력의 소진을 유도했다. 행정부에 따라 중점의 차이가 있었지만, 대소(對蘇) 봉쇄 및 억제라는 미국의 기본 전략은 냉전기 내내 일관되게 유지됐다.
냉전이 끝난 후 존 루이스 개디스 예일대 교수나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 국제정치학의 대가들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등 역대 행정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냉전 초기 조지 케넌 등이 제시했던 대소 봉쇄전략, 즉 억제전략의 기본 틀을 40여 년간 계속 유지하면서 그를 구현하기 위한 군사 태세를 갖춘 것이 소련과의 대결에서 궁극적으로 미국이 승리하게 된 요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서 동맹국들을 확대하고, 유엔 등의 국제기구들을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폭넓게 확보해 간 것도 미국의 억제전략 차원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편, 블라디슬라프 주보크나 안드레이 란코프 등 러시아 출신 연구자들은 냉전기의 체제 경쟁에서 미국이 승자가 된 요인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미·소 경쟁 와중에도 미국 지도자들이 적대국 소련의 정상들과 핵군축 등의 이슈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지도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문화 교류를 통해 소련 국민에게 미국 체제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공감시킨 점도 냉전체제 와해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각급 회담이 개최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문화와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소련에 유입돼 공산 체제 내에서의 변화를 갈망하는 여론이 형성된 점이 공산권 붕괴의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은 증대된 핵전력을 바탕으로 공세적 핵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킬체인이나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응징보복 능력과 같은 3축 체계 구축을 진행하고, 한미동맹 간의 확장억제 태세를 강화하면서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미동맹 차원의 억제전략이 핵전력을 앞세운 북한의 공격전략에 대응해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고, 한반도 평화라는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가늠할 수 없는 북한과의 신냉전 양상 속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냉전기 미국이 소련에 맞서 승리를 거뒀던 요인들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안보정책에 대한 범국민적인 공감대 형성, 그리고 북한의 내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대북 전략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