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경 사회부 차장

응급실이 파행 위기다. ‘추석 응급실 위기설’도 파다하다. 4년 전과는 천양지차다. 2020년 전공의 총파업 당시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마비되진 않았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맡는 의료진은 남겨뒀다. 낮에는 파업에 동참해도 밤에는 환자를 보살피던 의사도 적지 않았다. 이번엔 중환자실은 비워졌고, 응급실은 ‘뺑뺑이’ 사태로 위태롭다. 응급실 의사들마저 ‘줄사표’를 던졌다. 처우가 좋은 대형병원이나 개원가로 이직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부터 중형급 병원에선 흔했던 일이다. 이젠 지역대학병원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들이 빠져나간 지역병원 응급실은 황폐해졌다. 그나마 응급실이 무너지지 않는 건 책임감 강한 의사들이 버텨준 덕분이다.

응급실 의사들에겐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들은 여러 명이 함께 이직한다. 당직 등 근무 편의 때문이다. 집단으로 움직이다 보니 연봉 협상력은 높아졌다. 요즘 시세는 연봉 5억 원대다. 응급실 의사를 뽑지 못하는 지역병원은 상당수다. 응급실 의사들이 전국 각지 병원을 돌면서 연봉만 올렸다는 의료계 내부 비판도 많다. 상업화된 배경에는 근무 형태가 한몫했다. 통상 응급실 의사들은 24시간 근무 후 3∼4일 쉰다. 다른 진료과처럼 매일 출근하지도 않고, 돌봐야 할 입원환자도 딱히 없다. 병원과 환자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힘든 구조다. 병원을 쉽게 옮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잦은 이직은 응급실 파행의 단초가 됐다. 수도권과 지역 의료 격차도 커졌다. 응급실은 몇 년 전부터 위기였다. 전공의 이탈에 전문의 집단사직까지 겹치자 문제는 커졌다. 이는 의료계 고질적인 병폐와도 맞물린다. 주된 원인은 배후 진료를 맡는 필수의료진이 부족한 탓이다. 전공의 집단사직 후 대형병원에서 경증환자 등 외래진료 비중은 금세 회복됐다. 본연의 목적인 응급·중증 치료를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형병원이 응급·중증환자에게 집중하려면 외래진료를 최소화해야 한다. 환자를 제때 회생시키려면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등 배후 진료과의 업무 부담을 덜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1차 의료 강화도 필요하다. 응급실 의사는 대형병원에서 1차 의료 기능을 맡고 있다. 이들은 환자가 오면 중증도를 분류한 후 배후 진료과로 넘긴다. 지역사회에서 1차 의료기관인 병·의원이 제 역할을 다 한다면 경증환자가 응급실에 갈 이유는 사라진다. 독립적인 진료를 위해 의대 졸업 후 임상 수련을 의무화하는 ‘진료면허’ 도입도 시급한 대목이다.

응급실은 중증환자에겐 마지노선이다. 의사사회에서 응급실 파행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일부 의사단체는 응급실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추석 연휴 휴진을 독려 중이다. 마치 인명 피해가 생겨 정부가 비난을 받고 무릎 꿇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다. 미국의사협회 윤리지침엔 ‘진료 중단은 비윤리적인 행위’라며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만큼 다른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7개월째 의사단체는 모든 걸 반대만 하고 있다. 의사들이 반대하면 정부가 제대로 일하는 것이라는 쓴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정부도 시간만 보내선 안 된다. 응급실 파행은 의료개혁의 당위다. 원칙을 훼손치 않는 정공법이 필요한 때다.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