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유산 태아 장례 르포

정해진 시간 한꺼번에 화장
병원 폐기물로 불법처리도


화성=조율 기자 joyul@munhwa.com

지난달 30일 경기 화성시 함백산 추모공원 화장장. 장례지도사 유성훈(44) 씨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렸다. 하루 전 세상을 떠난 임신 18주 사산아(死産兒)다. 부모는 “아이가 나오면 입히려고 산 배냇저고리를 같이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사산아 화장은 성인 화장이 모두 끝난 뒤에 이뤄진다. ‘故 ○○○(산모 이름) 태아’. 유 씨는 관에 손을 올리고 부모 대신 “아가야, 좋은 곳 가렴”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20년 차 장례지도사로 한 달에 전국적으로 60건 이상의 사산아, 영·유아 장례를 하고 있다는 유 씨는 특히 사산아 장례를 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유 씨는 “16주가 넘는 사산아는 법적으로 화장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태아를 비닐봉지나, 택배 박스에 담아와 화장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세상의 빛도 보지 못했는데 마지막도 좋게 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사법에 따르면 16주 이하 사산아는 의료폐기물로 처리하지만, 그 이상은 시신으로 보고 사산증명서를 화장업체에 제출한 뒤 화장 또는 매장을 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산아가 이렇게라도 화장이 되면 ‘행운’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장례지도사 A 씨는 “병원이 산모들에게 화장 비용 명목으로 20만∼30만 원을 받고는, 의료폐기물로 불법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A 씨는 “부모가 확실한 사산아들마저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하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라며 “낙태 수술의 경우 태아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수백 번 사산아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유 씨는 아직 사산증명서에 ‘인공임신중절’이라는 표기를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의료법에 따라 병원은 태아가 사망했을 때 사망증명서에 사산한 이유 등을 적게 돼 있는데, 낙태 수술을 명시한 병원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 씨는 “임신 30주가 넘어도 사산되는 아이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이날 한 줌이 채 되지 않는 ‘故 ○○○ 태아’의 유골은 화장장 내 유택동산(집단 산골 장소)에 뿌려졌다(사진). 유 씨는 “세상은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났는지 궁금해할 뿐, 죽은 아이들이 어떤 마지막을 가지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며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아이들의 끝에도 사회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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