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있은 회담에서 여야 대표가 지구당 부활에 합의하면서 20년 만의 재도입 가능성이 커졌다.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 개막에 맞춰 지구당 부활 관련 합동 토론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입법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정치권의 논의를 반기면서도 개운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풀뿌리민주주의 구현’이라는 기대보다는 ‘돈 먹는 하마’가 된 ‘2004년 폐지된 지구당’을 부활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즉, 강한 팬덤을 가진 두 대표가 지구당 부활에 찬성하는 것은 ‘풀뿌리민주주의 강화’라는 목적보다는 ‘자기 세력 내지 자기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략적인 의도가 더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지구당 부활은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의 참여와 동원을 한층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온라인 조직력이 강한 개딸이 지구당을 활용해 오프라인에서도 세력을 키울 수 있다. 반면, 국회의원이 아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지구당은 온라인 지지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의 지지를 끌어내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지구당 부활’을 위해서는 사익 추구보다는 ‘당내 민주주의와 풀뿌리민주주의 강화’라는 본래의 목표와 원칙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 충실하게 지구당 부활의 전제 조건과 안전장치를 설계할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지구당 폐지 이후 정당들이 당원 관리와 지역 밀착형 정치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구당이 부활되면 풀뿌리민주주의가 강화될 것이란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현재 중앙당과 시도당 및 당협위원회도 민주적인 체질로 운영되지 않는데, 여기에 지구당을 더하는 것은 더 큰 부조리를 만들 수 있다. 중앙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가진 공천권·인사권·재정권 등 막강한 기득권과 권력 독점을 그대로 둔 채 지구당 부활의 순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구당의 구성원인 당원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중앙당과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분권화하고 자치화를 유도하는 ‘실질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옛 지구당의 부조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앙당 대표의 국회의원 공천권 및 지역(당협)위원회 위원장 임명권 행사, 그리고 시도당위원장 및 당협위원장을 겸직하는 국회의원의 지방의원 공천권 행사는 당내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지방정치의 중앙당 예속’을 강화하는 기득권 구조로 작동해 왔다.
이런 기득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지구당 부활이 자연스럽게 당내 민주주의와 풀뿌리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따라서 안전장치로서 지구당 부활의 전제조건들을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전제조건으로 △국회의원의 시도당위원장 및 지구당위원장 겸직 금지 △지구당 위원장 당원직선제 도입 △공직선거에서 당원과 지역 주민들의 ‘상향식 공천제’ 도입 △지방 기초선거에서 중앙당의 정당공천 배제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의 상시적인 공개가 필요하다.
지구당 부활은 이견이 많은 만큼, 국회 다수파의 독주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다. 여야는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의 겸직부터 금지하고 권력을 분산시켜 다양한 인물의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해 국민적 신뢰와 합의를 결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