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서재

최진영은 ‘삶의 참혹함’을 눈부시게 그리는 작가다. 그는 대체로 곤경에 처한 아이나 청소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홀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아이들, 세상에서 승자가 될 순 없지만 자신의 다짐(독백)을 지팡이 삼아 계속 나아가는 아이들을 그린다. 이때 인물이 내뱉는 독백은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인물이 품은 열의, 어둠 속에서 기어코 사랑 쪽으로 겨누는 마음의 활 때문일까? 그가 그리는 고통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자의 고통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시신을 뜯어 먹으며, 자기 몸속에 사랑을 간직하려는 인물(‘구의 증명’)에게 독자들이 열광한 건 가진 게 없는 자가 끝내 가진 것(사랑!), 눈물겨운 아이러니 때문일 게다.

‘쓰게 될 것’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인 ‘전쟁’을 아이의 눈으로 통과하는 이야기, SNS에서 우연히 만나 ‘농담 같은 진담’을 나누며 교감하는 사람들, 불안을 디폴트로 두고 생활하는 가족의 코믹하지만 서늘한 생활, 유전자를 조작해 ‘배아 디자인’을 하는 미래 사회 등 시의적인 동시에 과거와 미래까지 아우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표제작 ‘쓰게 될 것’에서는 전쟁 중 일상은 사라져도, 생활은 계속됨을 아이의 서술로 보여준다. 어른들이 “거울 속의 나”를 겨누는 것 같은 “반복된 일”(전쟁)을 벌이는 세상에서, 살아내는 게 곧 전쟁인 아이는 놀랍게도 “살아야 한다면 사는 게 낫다”고 다짐한다. 망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인물들은 한사코 ‘사랑’과 ‘삶’을 향해 기울어진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야 한다면 제대로 살아내겠다고 다짐하는 인물을 보는 일은 감동적이다.

이 책의 아름다움은 작가의 ‘대범함’과 넓은 시야, 폭이 넓은 걸음걸이, 무쇠 같은 힘에서 나온다. 이야기는 멀리 날아오르는 연처럼 거침이 없는데 일단 작정하면 아래는 바라보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날아간다. “살아야 한다면” 다음에 이어질 말들(이야기)이 작가가 앞으로 ‘쓰게 될 것’이 아닐까? 안온한 삶을 갖지 못했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퉤, 침 뱉고 앞으로 나아가는 ‘어린 짐승’ 같은 인물들을 계속 보고 싶다.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이따금 몹시 시적으로 펜대를 움직이며 최진영은 간다. 그의 행보가 참 멋있다!

박연준 시인

※박연준 시인의 연재를 마칩니다. 김민정 시인이 시인의 서재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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