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하안송 기자
그래픽 = 하안송 기자


■ 한국인의 기원
박정재 지음│바다출판사

‘단일민족’ 정치적 필요로 도입
유전적으로 북방·남방계 혼합
5000년전 한랭기후 피해 남하

기후변화·문명간 상호작용 덕
만주족·일본인과 유사성 공유
기후위기속 또한번 이동 예고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오해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대륙을 가로질러 한반도까지 도달한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한국인의 기원을 파헤친 다수의 최신 연구를 보면 사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사회 통합과 공동체 의식 고양이라는 정치적 필요로 형성된 용어로,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기후와 인류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전적 뿌리를 가진 한민족의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요약될 수 없다고 말한다.

복잡하게 얽힌 한국인의 유전적 기원을 살펴보기 위해 책은 그 출발점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보았을 때 북방계와 남방계 집단의 혼합으로 형성됐다. 북방계는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들로, 주로 사냥과 유목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눈이 작고 짧으며, 쌍꺼풀은 없고 짧은 속눈썹과 길고 좁은 코를 갖고 있다는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신체적 특징은 한국인의 기원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들은 이주를 거듭하면서 한반도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남방계 집단을 조우했다.

그에 반해 남방계는 남중국에서 기원한 농경민들로, 농업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사회를 꾸려나갔다. 북방계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넓은 코와 둥근 얼굴형을 가진 이들은 북방계와 오랜 세월에 걸쳐 한반도에서 함께 생활해 지금의 한국인을 형성하게 됐다.

한국인을 혼합 민족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북방계의 이주’는 기후 변화의 결과다. 약 5000년 전, 북방 지역의 기후가 급격히 건조해지면서 농업에 적합한 땅을 찾아 나선 북방민들은 당시의 ‘기후 난민’과 같았다. 날이 갈수록 건조하고 한랭해지던 지역에서 북방민은 한반도까지 꾸준히 내려왔다. 물론 이는 북방민만이 가진 특징은 아니다. 책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해 더 나은 생활 환경과 자원을 찾아 나서는 ‘이동 욕구’를 본성으로 갖고 있었다. 마지막 빙하기 말에 시베리아의 수렵채집민은 매서운 추위를 뚫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고 대만에서 출발한 오스트로네시아인은 인구 압박에 처할 때마다 배를 타고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이스터섬까지 이주하기도 했다.

이주의 역사는 한국인과 만주족, 일본인의 유전적 유사성을 가져왔다. 흔히 한국인은 몽골인과 민족적으로 가깝다는 통념과 달리 동북아는 기후 변화와 문명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비슷한 유전적 구성을 공유하게 됐다. 특히, 중국의 랴오허 문명과 한국인의 연관성은 주목할 만하다. 랴오허 유역에서 번성한 훙산 문화와 샤자뎬 문화는 한반도의 농경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DNA 분석에 따르면 랴오허 문명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인은 한국인으로 나타날 정도다. 당시 한반도에 살던 농경민들은 중국의 선진 농업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했고 이는 이후 일본의 농경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마치 자연의 힘에 이끌린 듯 한국인은 기후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적응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처럼 한국인의 기원을 찾는 여정은 곧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후는 과거 못지않게 지금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매년 한국의 기후 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습해진 여름 날씨와 길어진 열대야는 우리가 책이 아닌 현실에서 체감하고 있는 변화다. 세계적으로 다시 한 번 인구 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기후 변화로 인해 또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난다면 미래의 한국 사회는 인구구성이 변할 수도 있다. ‘기후 난민’의 이주로 형성됐던 우리 민족이 현대의 ‘기후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저자는 인구구조와 사회적 다양성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책은 본격적으로 우리 선조의 이주와 정착, 발전에 관해 이야기하는 3부에 앞서 1, 2부를 통해 호모사피엔스의 확산이라는 거시적인 이야기로 출발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퍼져나가는 호모사피엔스의 양상을 보여주는 이 전개 방식은 결국 한국인의 기원이 단순한 민족적 유산이 아니라 기후와 역사, 그리고 민족의 혼합이 만들어낸 다층적 이야기라는 사실에 설득력을 더한다. 나이와 성별, 정치 성향 등으로 인해 생기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저자가 펼쳐놓은 장대한 한국인의 역사 앞에서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500쪽, 2만48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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