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의 탄생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신동숙 옮김│인플루엔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검색과 정보의 취득이 쉬운 세상이 된 지 오래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손안에 인터넷이 있다. 보다 싼 물건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 일이 없고, 어려운 계산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복잡한 생각이 필요 없어 보이는 시대, 인간 뇌의 역할이 갈 곳을 잃은 듯 보인다.
저널리스트이자 지질학자인 저자는 굳이 알아볼 필요도, 기억할 이유도 없어져 버린 지식, ‘안다는 것’에의 근원적 접근을 시도한다. 지식이라는, 그야말로 광범위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를 놓고 오히려 가장 원초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진다. 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관되어 전승되는가. 그리고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차적으로 지식은 경험에서 비롯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말벌에 쏘였던 아픈 기억을 ‘소환’해 지식에 있어서 경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2004년 12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인도 안다만제도 쓰나미 사례를 통해 섬의 본토 원주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전승된 경험적 지식 덕분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다음으로 보편적이며 전통적인 지식 습득의 방식은 역시 학습이다. 저자가 인도 취재 중에 만났던 중년 여성 슈클라 보스는 빈민 지역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고, 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지식의 힘으로 부모와 가정을 변화시켰다.
이렇게 학습된 지식은 문자의 탄생 이래로 기록됐다. 그리고 인류는 지금껏 알려진 것과 학습된 것을 수집하고 보관한 방법을 궁리했다. 이 결과가 책이고, 책은 도서관에 보관됐다. 근·현대에 들어 지식의 수집과 보관, 접근의 방식은 더욱 방대하고 편리해졌다. 백과사전이 편찬돼 지식의 전파에 기여했고, 지금도 AI가 수많은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엔 지식을 얻기 위해 학교나 도서관에 가야 했지만, 이제는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로도 지구 반대편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더는 배울 필요가 없어졌나. 저자는 데이터에서 정보, 정보에서 지식을 거쳐 지혜로 진입하는 단계로 눈을 돌린다. AI를 활용해 수많은 정보를 추출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나 거기서 지혜를 걸러내려면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자국민의 기록에선 지워진 중국의 천안문 사건 등 가짜 지식의 연대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진실에 주목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지식의 가치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현대 사회에는 지혜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584쪽, 2만98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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