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은 유난히 반갑다. 그칠 줄 모르던 무더위가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조만간 추석이 지나 쌀쌀해지면 긴팔 옷을 꺼내 입어야 하고, 연말이 다가오면 두툼한 외투를 준비해야 한다. 삶의 지혜는 경험과 배움을 통해 얻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라도 더 살아온 사람, 즉 ‘선생(先生)’을 존중하며 그들로부터 지혜를 배운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노년기의 삶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과 마음의 기능이 쇠퇴한다.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것은 주름뿐일까? 노년기에 발달하는 심리적 기능은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지혜’였다. 지혜로운 사람의 일반적 이미지는 오랜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한 노인의 모습이다. 과연 노인은 젊은이보다 더 지혜로울까? 이 물음에 답하고자 노력했던 대표적인 연구자가 독일의 발달심리학자인 파울 발테스(Paul Baltes)다.
발테스는 베를린에 있는 ‘막스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30여 년간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그에 따르면, 지혜는 인생을 조화롭게 경영하는 고도의 지성적 능력으로서, 5가지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인생 경영을 위한 풍부한 사실적 지식이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인간과 인생 그리고 세상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둘째는, 풍부한 절차적 지식으로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과 전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의미한다. 동일한 해결책이라도 어떤 방법과 절차를 통해 접근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바탕 위에서 다음의 세 요소가 겸비되어야 지혜가 잘 발휘될 수 있다. 그 첫째는 인생의 다양한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다. 인생의 단계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그러한 상황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며, 전 생애에 걸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최선의 해결책은, 상황적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서 삶의 목표와 가치가 개인과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절대적 가치를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을 지니며 삶의 문제를 해결할 때 개인차와 문화차를 고려한다. 셋째는,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인식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요컨대, 지혜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되 구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이해관계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지혜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지혜로운 사람도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발테스는 지혜의 개인차를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삶의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최대한 상세하게 말하도록 요청한다. 그들의 응답 내용을 나이와 직업이 다른 여러 명의 평가자가 지혜의 5가지 구성 요소에 근거해서 채점한다.
발테스의 연구에 따르면, 지혜는 나이에 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다. 인생 경험이 많다고 지혜가 자동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혜가 발달하는 추세는 20대부터 급격히 가팔라져 50세 전후의 중년기에 정점을 찍고, 노년기에는 그 추세가 꺾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노년기에는 왜 지혜가 감소할까? 우선, 노년기에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이 감퇴한다. 또한, 노인들은 새로운 지식과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지닌 기존 지식과 신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노인이 지혜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와 지혜의 일반적인 관계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노인 가운데는 젊은 시절의 총기가 사라지고 자기 주장만 강해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생을 더 높은 관점에서 관조하며 지혜를 키워나가는 노인도 드물지 않다.
지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위한 개인적 지혜도 있고,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위한 사회적 지혜도 있다. 불멸(不滅)의 욕망과 필멸(必滅)의 운명 사이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종교적 지혜도 있다. 과거에는 노인을 지혜로운 원로(元老)로 받들었다. 그러나 현대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른 시대라서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학생들 간에도 학년에 따라 세대차가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과거의 경험을 들먹이며 젊은이에게 함부로 충고하면 ‘꼰대’나 ‘라떼’로 취급될 수 있다.
참으로 많은 나날을 살았다. 지난주에 66번째 생일이 지났으니 무려 2만4000여 일을 살았다. 그 긴 세월 동안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르며 무엇을 배웠을까?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늙음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은 세월 동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노년기는 정신없이 바빴던 직장생활에서 물러나 인생 경험을 성찰하며 지혜를 키워나가는 소중한 시기다. 가을에 곡식이 여물고 과일이 제맛을 내듯이, 노년기는 지혜를 숙성시키는 인생의 계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