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누구라도 어디서든 제 아들 허시를 만나면 보살펴주세요. 허시는 저의 전부입니다. 가자 지구에서 사는 분들도 엄마가 있겠지요. 저도 엄마로서 어디서든 어려움에 처한 여러분의 아이를 돕겠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테러 때 아들 허시(23)가 납치되자 예루살렘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는 레이철 골드버그는 ‘누구라도 어디서든 제 아들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I hope someone somewhere is being kind to my boy)’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누구라도 어디서든’이란 표현은 후렴구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인질 석방 캠페인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가자 국경 부근에서 열린 노바 음악축제에 친구들과 함께 갔던 허시는 하마스 테러 당시 자동차로 대피했지만, 수류탄 폭발로 왼팔을 잃는 사고를 당한 뒤 납치됐다.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골드버그의 싸움은 다보스에서 바티칸, 유엔, 미국으로 이어졌다. 그가 지난 1월 다보스에서 납치 피해 가족과 캠페인을 벌였을 때엔 ‘매너리즘에 빠진 다보스가 하마스 테러 피해 가족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또, 남편 존 폴린과 8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인질 석방 촉구 연설을 했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조건을 견뎌낸 허시는 지난 4월 왼쪽 팔이 없는 상태로 하마스 공개 영상에 등장해 가족에게 일시적 희망을 줬지만, 지난 1일 라파 지하터널 부근에서 5명의 납치자 주검과 함께 시신 상태로 발견됐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이 라파 터널로 옮겨지기 직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하마스는 지난해 테러 때 250여 명을 인질로 끌고 간 뒤 이스라엘 정부 압박용 심리전 수단으로 이들을 활용하며 살해하는 수법을 반복하고 있다. 허시 등의 ‘시신 귀환’ 후 이스라엘에서는 인질 석방 요구 시위가 뜨거워지고 있다. 골드버그는 2일 아들 장례식에서 “지난 332일 내내 1밀리초(1000분의 1초)마다 괴로웠고, 내 영혼은 3도 화상을 입은 듯했다”고 했다. 이어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아들이 끌려가기 직전 보낸 ‘엄마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메시지에 답했다. 그러고는 “우리 가족이 시련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젠 네가 지켜줘야 한다”며 추도사를 마쳤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