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전국부장

지역 의료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추진된 의대 증원 갈등의 충격파가 지역에 더 크게 다가오고 있다. 최근 의사 부족 등을 이유로 일부 종합병원들이 응급실을 단축 운영하기로 했는데 모두 충북, 강원, 세종 등 지역 병원들이다. 지역의 다수 종합병원은 현재 응급실 인력 부족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응급실 근무 기피 현상이 있었는데 의사들이 고연봉이 보장되는 서울 등으로 옮기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모습이다. 의사가 더 귀해진 지금이 일부 의사들에겐 몸값을 키울 절호의 기회다. 여전히 많은 의사는 사명감 하나로 진료 현장에 남아 의료 붕괴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 역시 군의관 등을 투입해 의료대란을 막아 보려 하지만, 지역의 환자들과 가족들은 추석을 앞두고 어디서 균열이 생길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일 것이다.

지역 의료 기반 부족이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취지 자체엔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최근 실시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선 68.9%가 의대 정원을 점진적으로 증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괄 증원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22.6%였다. 국민은 물론, 양심 있는 다수 의사도 속도와 규모의 문제일 뿐 증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셈이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의사가 부족한 국가다. 그런데 그 의사들도 서울 등 수도권 중심으로 몰려 있다. 현재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3.7명인데 우리나라는 2.6명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3.2명인 반면, 전남은 1.7명, 경북과 세종은 1.4명으로 서울과 격차가 배 이상으로 난다. 제주의 경우 지난 2022년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내륙으로 원정진료를 떠난 사람들이 14만여 명, 그 비용만 24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서울은 종합병원 도착 가능 시간이 3분이지만 충북은 27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의사 증원 논란의 본질은 지역과 수도권 간 빈익빈 부익부, 또는 수도권 집중화 문제다. 수도권에 심각하게 집중화한 의료 환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의지대로 관철된다고 한들, 과연 지역 의료 환경 개선이라는 애초 명분이 실현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정부는 지방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역에 안착하는 변호사가 늘어난 것처럼 지방대 의대 정원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지역 의사가 증가할 것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지역소멸 위기감이 커진 가운데 의사들이 환자가 없는 지역에 값비싼 장비를 사들여서 오래 남아있을 리가 없다. 지방대 의대를 졸업하더라도 강제적인 장치나 인센티브가 없다면 결국 서울로 대거 올라가거나 부산,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로 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래서 일본식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의대 입학 시 지역 의사를 별도로 전형하고 장학금 등 혜택을 준 다음 10년 정도 지역에 의무 봉사를 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정부와 여야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제도다.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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