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세 어긋나는 제조물책임법

22대 국회 들어 자동차 등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전적으로 입증하도록 하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발의가 물 밀듯 쏟아지는 가운데,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제조사에 일괄적인 입증 책임을 묻는 법이 시행되는 경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에 휩쓸려 세계적인 추세에 반하는 법안을 졸속으로 통과시키기보단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미국의 ‘제조물 책임법’을 살펴보면 예외적으로 제조사 책임을 묻는 경우는 소비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했음에도 해당 제조물이 적절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때만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제조사에 책임을 우선 묻기보다는 불법행위법상 인과관계에 적용되는 ‘일반법칙과 원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럽은 지난 3월 제조물 책임지침을 확정하며 기업으로 책임을 일괄 전가하기보다는 소비자 책임을 일부 완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와 관련, 미국은 소비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했음에도 제조물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경우 예외적으로 제조사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EU는 제조사가 안전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거나, 제품 결함이 명백한 오작동으로 발생한 경우 중 하나만 소비자가 증명해도 제조물 결함으로 인정한다.

한국도 이미 2017년 법 개정으로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덜어주는 규정을 명문화한 바 있다. 기존에 피해자가 결함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해야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간접적으로라도 결함을 입증하면 책임 관계를 추정할 수 있도록 개정된 법이 현재 시행 중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피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일단 소송을 제기하고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제조 사실만으로 기업 이미지가 회복 불능한 손상을 입게 되므로 법률 개정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예린 기자 yrl@munhwa.com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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