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反기업법' 더 세진 22대 국회 - (3) 소송 부추기는 제조물책임법
급발진 사고도 제조사 입증 책임
‘블랙컨슈머’ 양산 경영활동 저해
“소비자 권리만 보호 공평성 위배”
개정안에 자료제출명령도 포함
경쟁사 영업비밀 탐지 수단 우려
기업이 시장에 내놓은 제품과 관련된 피해나 사고와 관련, ‘입증 책임’을 온전히 회사가 지도록 하는 내용의 ‘제조물책임(PL)법’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잇달아 발의돼 경영계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수사 당국이 ‘운전자 과실’로 판단한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사례와 같이 급발진을 허위로 주장하더라도 제조사가 제품 결함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법안을 악용한 소송 남발로 경영 환경이 위축되고, 중장기적으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들어 여야 의원 7명(더불어민주당 4명·조국혁신당 1명·국민의힘 2명)은 기업 경영활동 위축 가능성이 제기된 PL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 가운데 염태영(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의 경우 제조업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하는 내용인 ‘입증 책임의 전환’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소비자의 입증 부담을 줄이고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이지만, 경영계는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망 9명 등 모두 14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사고에서 운전자 차모 씨는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일관되게 주장했으나 검찰은 차 씨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재판에서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시 가해 운전자의 구제 길이 열릴 수 있다. 또 법안을 악용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 양산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소송이 제기되고, 결함 없음이 증명될 때까지 소송이 유지되면서 경영 활동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소송에서 양 당사자는 평등한 지위로 대등한 공격·방어 수단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개정안은 소비자의 권리만을 두텁게 보호한다”며 “현행 PL법도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등 권리보호 수단을 갖췄고, 피해 소비자도 민사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을 활용해 증거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신설된 ‘자료제출명령 제도’ 도입은 기업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는 조항으로 분석됐다. 통상 자료제출명령은 지식재산권을 비롯해 공정거래법 위반 등 실무상 손해액 입증 위주의 극히 제한적 범위 소송에서만 적용되는 제도다. 제품 결함 증명에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자료제출명령이 악용될 경우 경쟁 업체의 영업비밀 탐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클 것으로 경영계는 전망하고 있다. 불응 시 상대방 주장을 진실로 간주하는 등 소송상 불이익이 현저해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있더라도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 팀장은 “개정안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임에도 손해 증명에 필요할 경우 명령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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