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신문왕이 수도를 옮기려다 이루지 못한 達句伐(달구벌)이 ‘삼국사기’의 지리지에는 達句火(달구화)로 기록돼 있다. 성(城)을 가리키는 신라말 ‘벌’을 한자 伐(칠 벌)의 소리와 火(불 화)의 뜻을 빌려 표기한 차이다. 경덕왕 때 주(州) 앞에는 한자 한 글자, 소경·군·현 앞에는 한자 두 글자로 바꾸는 정책에 따라 達句(달구)를 비슷한 소리의 大丘(대구)로 바꾸고 火(화)는 아예 생략해 버리면서 지금의 대구광역시 이름이 탄생했다. 조선 후기에는 공자의 이름 丘를 피해 한자를 邱(구)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구의 고대 이름이었던 달구벌 또는 달구화에는 통치자가 거주하며 다스리던 성(城)의 이름이 그대로 고을의 이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다. 그 성은 지금도 전해지는 달성(達城)이다. 달성은 조선의 읍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삼면이 깎아지른 높은 절벽 지형에 만들어졌고, 성벽에 오르면 대구의 주요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며, 조선의 읍성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삼국사기’의 지리지에는 경남 밀양의 삼국시대 이름이 推火(추화)이며, 경덕왕 때 密城(밀성)으로 바꾸었다고 나온다. 두 개를 조합하면 삼국시대의 신라말 이름이 밀벌임을 알 수 있다. 推火는 한자 推(밀 추)와 火(불 화)의 뜻을 빌려, 密城은 한자 密(빽빽할 밀)의 소리와 城(벌 성)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으로, 같은 것이다. 1390년에 밀성군을 밀양부(密陽府)로 바꿔 승격시키면서 지금의 밀양 이름이 탄생했다.

밀양의 고대 이름이었던 推火 또는 密城에도 통치자가 거주하며 다스리던 성의 이름이 그대로 고을의 이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다. 밀양 시내 동쪽의 추화산(242.4m) 정상을 둘러싼 둘레 1430m의 테뫼식 추화산성이다. 성은 높지 않지만 밀양의 주요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방어력 역시 조선의 읍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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