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소련이 ‘라이카’라는 이름의 유기견을 태우고 그해 11월 3일 1호보다 6배나 무거운 스푸트니크 2호 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큰 충격을 받은 미국은 이듬해 1월 31일에야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 겨우 추격의 고삐를 좼다. 소련의 연이은 발사 성공은 강력한 추진력의 로켓 엔진뿐 아니라 안정적인 자동항법, 정밀유도 시스템 등 난제를 모두 풀었으며 머지않아 미국을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장의 예고편이었다.

미·소 우주 개발은 이처럼 전략병기 확보 경쟁으로 시작됐다. 2045년 세계 5대 항공우주강국 진입의 거창한 목표를 내건 우주항공청이 며칠 전 개청 100일을 맞았지만, 방향을 제대로 세워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항공우주는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궁금하다. 예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최소한의 투자 효율을 검토했는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항공 부문의 소외가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말 집계된 2022년도 항공산업 생산은 6조3410억 원, 우주산업(6274억 원)의 10배 이상이다. 반면, 우주항공청이 최근 발표한 2025년도 예산편성안은 정반대다. 총예산이 9649억 원으로 전년보다 27% 늘어난 가운데 항공 분야에는 전년보다 34% 줄어든 405억 원을 배정했다. 생산은 10배 많지만, 예산은 22배 이상 적게 할당된 셈이다.

항공산업이 체감하는 소외감은 훨씬 크다. 최근 우주항공청 주관 회의에 참석한 항공업체 한 임원은 “우주항공청의 약칭이 ‘우주청’인데 왜 ‘우항청’이라고 말하느냐”는 질책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민간 출신 일부 우주항공청 공무원의 고압적 태도에 ‘벌써부터 갑질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미국이 우주 경쟁에 매진하던 시기에 국가 역량이 우주에 집중됐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아직까지 현역을 지키는 B-52 폭격기를 비롯해 오래도록 우리 영공을 지켰던 F-4 팬텀 전투기가 개발되고 음속 2배를 넘는 센트리 시리즈 전투기가 선을 보인 게 바로 그 시기다. 항공에 대한 투자는 미국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우주 로켓만으로 초강대국으로 군림한다고 생각하면 바보다. 항공산업은 미국의 안보를 유지하는 바탕이다. 우리는 더하다. 어떤 나라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항공산업과 그 생태계를 일궈왔다.

대한민국 항공산업은 지난 1975년 제1차 전력증강사업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깊은 관심과 지원으로 지금까지 50성상을 가꿔온 산업이다. 시행착오도 겪고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으면서도 2026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국산 KF-21 보라매 양산을 앞둘 만큼 성장한 항공산업이 우주항공청으로 인해 후퇴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주항공청은 항공업체가 집중된 경남 사천 지역에서 왜 ‘우주항공청은 항공우주연구원의 사천 지소’라는 비아냥이 나오는지, ‘우주항공청 개청 이전이 오히려 나았다. 이럴 바에야 우주청과 항공청은 아예 분리하는 게 낫다’는 반응마저 나오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개청 100일을 지나는 지금이 궤도를 수정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다.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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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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