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의 내 모습. 젊었던 그 시절을 중년에 접어든 요즘에 되돌아보며 내 모든 시간을 사랑하자는 다짐을 한다.
1990년의 내 모습. 젊었던 그 시절을 중년에 접어든 요즘에 되돌아보며 내 모든 시간을 사랑하자는 다짐을 한다.


■ 사랑합니다 - 내 젊은 시절에게

누가 우리들의 그 시절을 다 데려갔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그리움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까? 젊은 날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내 젊은 시절은 저 멀리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누가 우리들의 그리운 그 시절을 다 데려갔을까?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보다가 우리들의 학창시절 모두가 외웠던 윤동주 시인의 서시 구절이 갑자기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도 별이 바람이 스치운다.’

학창시절의 나를 보다가 지금의 나를 보니 갑자기 소멸해 버린 세월의 무상함을 향해 어떻게 우리들의 그 시절을 다 데리고 갔느냐고 묻고 싶다. 중년 이후의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간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많은 허송세월을 그냥 보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허송세월이 아닌 인생의 시간이 있었을까? 시간의 정체는 바로 허송세월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내용이 나온다. 허송세월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만나는 일은 어떤 기분일까? 그는 ‘자기 그림자’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도덕적 책임 같은 거라고 말한다. 그럼, 나에게 ‘그림자’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의 그림자’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 걸어온 삶의 그립고 그리운 추억들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건 이런 내 삶의 그리운 추억들을 잘 해석해야 된다. 그래야 내 인생이 외롭지 않다. 어떠한 삶의 기억이나 경험은 다 이유와 깨달음이 있다. 그냥 지나 보내는 경험이란 없다. 모든 경험은 다 배울 점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우리가 거기서 배움을 찾을지 그냥 지나갈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어릴 적 내 인생의 출발선은 처음부터 위태위태했지만 좋았던 기억들과 힘들었던 기억들이 서로 얽혀서 나를 추억해 준다. 좋았던 추억과 힘들었던 추억이 서로를 균형되게 내 삶을 지탱해주며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준거 같다. 젊은 시절, 내가 허락하지도 않은 삶의 위기가 몇 번이나 나를 삶의 밑바닥으로 몰아가곤 했었다. 그간 노력했던 일들은 매번 나를 배신하고, 마치 인생에 호구가 되어버린 것 같은 내 젊은 시절. “왜 하필 나인가” 하고 내 삶에 원망스러운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가 하면, 꿋꿋하게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보고 도서관을 나설 때 그 밤공기의 훈훈함은 아직도 내 몸은 기억하고 있다. ‘푸르스트 효과’라는 게 있다. 어릴 적 향기 같은 특정 자극이 있을 때 그것과 관련된 기억이나 감성이 되살아나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도 가끔은 밤공기가 훈훈하게 불어오면 그때 그 시절에 도서관을 나서는 훈훈한 느낌의 내가 느껴진다.

삶은 내게 ‘공덕천과 흑암녀’를 같이 보내주었구나 생각한다. 불교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아름다움과 행운을 불러오는 선녀 공덕천과 못생기고 불운을 달고 다니는 흑암녀는 쌍둥이 자녀이다. 그래서 항상 붙어 다닌다. 그래서 나에게 공덕천처럼 행운을 가져주면, 그다음은 또 나에게 흑암녀처럼 불운도 가져다준다. 행운도 내 삶이고, 불운도 내 삶의 일부분이다. 불운이 닥치더라도 젊은 시절 나처럼 거부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이제는 내 불운도 기꺼이 진심으로 안아주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삶에서 배운 가르침이다.

“인생이란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 고진하 시인의 말씀이다. “우산 챙기지 않고 나갔다가 소나기를 만나 흠뻑 젖어 돌아오며 중국 소동파의 시가 떠올랐네. 숲의 나뭇잎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도 괘념치 말게, 시 읊조리며 천천히 거닐어도 좋은 것을.”

그 시절의 그리움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천변만화하는 인생길을 걷다 폭풍우를 만나도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웠다면 빗소리가 천상의 음악처럼 들리리라.”

박재홍(KT경북 포항지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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