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봉 ‘공전 - 달과 도시의 조우’, 지름 150㎝, 캔버스에 아크릴, 2024.
이종봉 ‘공전 - 달과 도시의 조우’, 지름 150㎝, 캔버스에 아크릴, 2024.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과 전통을 잘 간직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역할이 참으로 지대했다. 우현 고유섭(1905∼1944). 우리 예술을 비애나 한으로만 설명한 식민사관에서 탈피, 혼과 얼을 헌신적으로 수습해 후손에게 전해주었다. 조선의 백자를 바라보며, 깊은 내재적 정적미와 군자다운 기상을 흡입하는 것도 다 그 덕이다.

시문에도 일가를 이룬 우현의 글에 밤하늘이 많이 등장한다. ‘…별 하나, 별 셋, 별 둘 유리창 하늘 위에는 달이 소리 없이 둥그노라…’(‘화강소요부’ 중). 그 ‘둥근 달’이 한 세기가 지날 무렵, 이종봉의 화면에 다시 떠올랐다. 창세 이래 공전은 의구하고 오차가 없지만, 관조의 정서는 격차가 느껴진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이 지척에 있는 달의 모습이 크고도 밝다. ‘공전’이 곧 ‘공존’이라는 작가의 말마따나 도시와 달은 서로를 밝혀준다. 일론 머스크와 성층권 넘어 어디쯤 여행하다가 포착될 법한 익숙한 앵글이다. 마천루 첨탑과 달의 극적인 조우. 엘리엇과 외계인의 영화적 만남을 떠올리지 않는가.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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