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에이즈는 치료약으로 다스릴 수 있는 만성질환이다. 약을 먹는 감염인의 평균 수명은 감염되지 않은 이들의 평균 수명과 비슷하다. 그러나 에이즈를 극복했다는 것은 의과학에서의 얘기일 뿐. ‘에이즈’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사회적 의미는 다르다.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연출 신유청)가 에이즈 공포로 벌벌 떨었던 시절과 현재를 잇는 지점이다.

“자네는 에이즈야.”

이 작품의 시공간 배경은 1985년 미국 사회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성소수자를 혐오하며 낙인찍던 시절이다. 반공주의의 화신인 변호사 ‘로이 콘’(이효정·김주호 분)은 주치의로부터 에이즈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은 에이즈에 걸린 게 아니라며, 되레 의사를 협박한다. “에이즈·호모·게이·레즈비언. 단어들이 성적 취향을 나타낸다 생각하겠지만, 아니야.” 로이 콘은 “라벨(낙인)들이 알려주는 것은 단 하나. 먹이 사슬에서의 위치”라고 강변한다. 사회적 강자인 자신에게는 낙인을 거부하고도 남을 만한 권력이 있다는 의미다.

극 중 ‘라벨’로서 에이즈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화제. 지난 9일 취임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올해 출간한 저서에서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과학과 무관한, 에이즈 소재의 사회적 차별 논쟁이 안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벌어졌다. 이와 같은 시의성, 극 중 인물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저씨’로 만든 배우 김주호의 연기 등이 이 작품의 흥미로운 요소다. 심각한 대사를 뱉던 배우는 금세 능청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객석의 웃음을 끌어낸다.

“로이 콘이라는 그 완고한 인물에게 전염병, 그러니까 죽음이 들이닥쳤을 때의 묘한 느낌이 매력적이었어요.” 신유청 연출이 이 작품에 끌린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출마에도 영향을 끼친 동명의 실존 인물이 로이 콘의 배경이다. 극 중 로이 콘은 대통령뿐 아니라 영부인과도 연락이 가능한 세속 권력을 과시한다. 신 연출은 “그에게는 위로 올라가겠다는 생각뿐인데, 죽을병에 걸려 누워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미국 색채가 강하고, 당시 현지 용어를 그대로 쓴 탓에 감상이 어려운 작품일 수 있다. 에이즈에 걸린 프라이어와 그의 동성 연인 루이스, 자신의 종교에 반하는 성적 지향으로 괴로워하는 조셉과 그 아내 하퍼 그리고 로이 콘 등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구조도 작품 난도를 더한다. 다만 로이 콘이 보여준 상승 지향, 각자도생은 한국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 연출은 “로이 콘은 아주 인간적인 인물이고, 배우에게도 그 점을 감안해 연기해달라고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유승호·고준희·정혜인 등의 연극 데뷔작으로 주목받았던 작품이지만, 막상 공연장에서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공연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28일까지.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서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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