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안 인터뷰 - 취임 한 달 조지호 경찰청장
마약 중심의 범죄 생태계 우려
이태원·홍대 등 집중 탐문수사
새 조직 기순대·형기대도 제몫
딥페이크 성범죄 위장수사 범위
아동 넘어 성인 대상 허용해야
텔레그램 비협조땐 인터폴 수배
이상 동기 범죄 일정 패턴 있어
예측모형 개발중… 내년초 활용
인터뷰 = 김충남 사회부장, 정리=조재연 기자
“경찰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도 마약 조직이 단시간 내 초기 단계의 조직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영화 ‘시카리오’, 드라마 ‘나르코스’의 무장 마약 카르텔은 우리에겐 화면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취임 한 달째를 맞은 조지호(56) 경찰청장은 “마약을 중심으로 범죄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 지위를 이미 2016년 상실했다. 지금은 조직폭력배가 경찰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지만, ‘마약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 사활을 걸고 덤벼들면서 “마약 범죄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마약, 사이버 도박, 악성 사기 등으로 범죄단체가 얻는 이익을 근절하는 것이 근본 처방임을 강조했다. “마약과 조직범죄의 연결고리를 철저히 뿌리 뽑겠다”는 조 청장을 9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만났다. 일상을 불안하게 하는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 텔레그램을 타고 번지는 딥페이크 성범죄 대책도 들어봤다. 역대 경찰 수장 중 가장 그립감(장악력)이 강한 인물로 평가받는 조 청장은 모든 현안에 막힘이 없고 똑 부러졌다.
―텔레그램 법인 내사에 들어갔다. 수사가 가능한가.
“국내외 플랫폼 업체들은 범죄 사실이 명백한 경우 수사 협조를 해 준다. 그런데 텔레그램이 독자적 방침을 내세워 명백한 범죄에도 협조하지 않는 것은 보편적 가치에 위반하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범죄가 되는 경우 당연히 협조해야 하는데 그 회사 기준만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법의 심판을 내릴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
―어떤 방법이 있나.
“외국 법 집행기관과 협조하고, 인터폴·유로폴 등 국제기구의 도움도 받겠다. 인터폴 적색수배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 주범) 권도형의 경우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지만,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고 미국에서도 똑같이 요청했다. 권도형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파벨 두로프(텔레그램 CEO)는 적용이 안 되는 게 아니다.”
―텔레그램 본사는 이메일 외에 접촉할 방법이 없다는데.
“최근 우리가 여러 조치를 하면서 텔레그램 쪽에서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전해왔다. 수사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나, 텔레그램 쪽도 전과는 달리 입장이 바뀌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대책은.
“첫째는 단속이다. 허위 영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올해부터 사용하고 있다. 둘째로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주요 국 법 집행기관, 경찰 관련 국제기구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셋째가 교육이다. 1000여 명에 이르는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딥페이크가 왜 심각한 범죄행위인지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마지막으로 제도 개선이다. 위장수사의 경우 우리 법체계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에만 가능하게 돼 있어 성인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기회에 마약이나 사이버 도박 위장수사도 요건을 엄격히 하는 대신 허용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마약 범죄가 연소화하고 있고, 수법도 치밀해지고 있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마약을 중심으로 범죄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미국이나 중남미에는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마약 카르텔이 있다. 우리나라도 완전히 예외라고는 보지 않는다. 시·도경찰청 마약수사전담팀뿐 아니라 형사기동대 중심으로 첩보활동을 강화하고 단속을 철저히 할 것이다. 범죄 연소화를 막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고, 국내외 법집행기관과 긴밀히 협조할 것이다.”
―스토킹·가정폭력·아동학대·데이트폭력 등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는 어떻게 대응하나.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는 가해자를 조기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피해자 보호다. 관계성 범죄는 일회성 범죄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재발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피해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겠다. 경찰에는 그런 범죄에 대해 3중 확인하는 시스템이 있다. 112 신고로 지역경찰에서 사건을 처리하면 상황체계로 현장 조치를 확인하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피해자에게 전화해 확인하고, 시·도경찰청에서 다시 한 번 전화한다.”
―이상동기 범죄와 흉기 사용 범죄로 국민이 불안을 느낀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치안이 가장 안정된 나라의 하나인데,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크다.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불안감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의 하나가 이상동기 범죄다. 내년 초까지는 112 신고 등을 기반으로 이상동기 범죄를 판단하는 모형을 만들 것이다. 이상동기 범죄의 특징은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이지만, 최대한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모형을 개발하고 있고 상당 부분 진척됐다. 그리고 그간의 이상동기 범죄 전반적인 흐름을 봤을 때 일정한 패턴이 나오는데, 그 패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기동순찰대(기순대)·형사기동대(형기대) 등 조직개편 당사자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기본적으로 기순대·형기대는 행정 지원 인력을 빼서 최일선에서 국민을 만날 수 있는 순찰 업무로 보낸 거다. 3000명을 현장 접점으로 보낸 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하면 지역 주민이 불안해하는데, 기순대를 보내면 아파트 주민이 창문을 열고 현관만 나서도 경찰관이 보인다. 고려제약 리베이트 수사는 형기대 없이 불가능했다. 수서경찰서에서 덩치가 너무 크니까 고려제약으로 적당히 꼬리를 잘라 마무리하려 했는데, 수사를 형기대로 옮겨서 ‘심폐 소생’한 거다. 마약 수사도 마찬가지다. 이태원에 30명 보내서 한 달 집중적으로 마약 관련 탐문수사를 하면 마약 할 수 있겠나. 실제로 이태원·홍대·강남 중심으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경찰관 과로사와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실제 근무 여건은 어떤가.
“3년 전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하면서 경찰이 1차 종결권을 갖는 것으로 수사 구조가 바뀌었다. 경찰 부담이 늘어나는 건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적절한 조치 없이 구조만 바뀌었다. 경찰도 보완해 나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실태 진단팀을 통해 개선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략 말하면, 일차적으로는 불필요한 일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 현장에서 소위 말하는 조직 운영의 ‘노이즈’가 생기는 부분은 확실하게 걷어내겠다. 두 번째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위에서 관련성 있는 사건을 모아주면 훨씬 효율적이 된다. 세 번째로, 업무량 편차가 있는 부서의 사무 분장 조정도 생각하고 있다.”
―경찰 초과근무 등 업무 강도가 과도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초과근무수당과 업무 강도가 물론 비례관계에 있지만,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가장 업무 부담을 호소하는 곳이 통합수사팀인데, 요구하는 것은 일한 만큼 초과수당을 인정해 달라는 거다. 그래서 상한선을 다 열어줬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가 지연된다는 여론이 많다.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을 10여 일 이상 단축하면서 수사권 조정 이전 수준으로 내려왔다. 60일 수준이었던 처리 기간이 최대 75일 수준까지 갔다가 60일 정도로 됐다. 그렇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 기간은 다를 수 있어, 계속해서 사건 관리를 강화하겠다.”
―경찰이 올해부터 대공수사를 전담하는데,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대공수사 역량은 충분한가.
“안보 수사 특징은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면서 수사 단계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국민 눈에는 수사 단계로 넘어오는 것만 보인다. 최근 민중민주당을 압수수색했다. 원외 정당이지만 검찰·법원도 정당의 압수수색에 매우 큰 부담을 느꼈다. 그 외에 진행 중인 사건도 꽤 있지만, 안보 수사 특성상 일일이 국민에게 보고할 수 없을 뿐이다. 경찰청장으로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경찰의 역량은 국민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드리고 싶다. 국민이 믿어주신다면, 경찰이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데 있어 한 치의 빈틈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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