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제주 제주시 도남동 한 사무실에서 2년 전 별세한 어머니 고 강원여 후원자의 이름으로 초록우산에 ‘추모 기부’를 한 딸 이정열(57·오른쪽) 후원자와 그의 남편 황금신(56) 후원자가 초록우산이 전달한 감사패를 들며 웃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3일 제주 제주시 도남동 한 사무실에서 2년 전 별세한 어머니 고 강원여 후원자의 이름으로 초록우산에 ‘추모 기부’를 한 딸 이정열(57·오른쪽) 후원자와 그의 남편 황금신(56) 후원자가 초록우산이 전달한 감사패를 들며 웃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 <추모기부 특집>
별세한 부모 이름으로 1000만원 쾌척 이정열·황금신 부부

2015년부터 정기후원해온 부부
평생 함께 기억하잔 뜻으로 결정
저소득아동 10명 장학금 받게돼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좋은 문화
미래 위한 유산기부도 확산되길”


2022년 별세한 고 강원여 후원자 생전 모습.
2022년 별세한 고 강원여 후원자 생전 모습.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한평생을 ‘희생’ 속에 살아오신 분이세요. 혹시나 병원에서 큰 병이 발견되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무서워 진통제로 생을 보내셨죠. 어머니는 평생 아는 노래가 ‘애국가’밖에 없을 만큼 문화생활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쏟아져요.”

“제 기억 속 장모님은 항상 허리를 굽히고 계셨어요. 허리를 펴신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찾아뵐 때마다 늘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셨고, 물 한 잔이라도 더 떠다가 주시곤 하셨어요. 제가 기억하는 장모님은 ‘선하다’는 표현보다는 ‘순수하고 순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분이셨어요.”

11일 초록우산에 따르면 제주에 거주하는 이정열(57), 황금신(56) 부부는 지난 2022년 사랑하는 어머니, 장모님을 잃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요양원에서 작고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 딸 이 씨에게는 큰 아쉬움과 상처로 남아 있다. 부부는 이후 어머니 ‘고 강원여’의 이름으로 초록우산에 1000만 원 ‘추모 기부’를 결정했다. 이에 제주 내 저소득 가정 아동 10명이 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부부는 어머니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기부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 씨는 “2011년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을 분들이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살던 마을에 13년간 쌀 기부를 해오고 있다”며 “덕분에 지금까지 마을 분들이 저와 제 아내를 ‘쌀집 아들’ ‘쌀집 며느리’로 부른다”고 전했다. 황 씨는 “기부 덕에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기억해준 경험 덕에 장모님이 소천하셨을 때 장모님을 평생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추모 기부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누군가를 돕는 선한 행위인 기부가 곧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과정이자 방법이 돼 너무 좋았다”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 역시 분명 좋아해 주시고, 저희의 결정을 칭찬해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황 씨 이 씨 부부는 추모 기부 전에도 각각 2015년, 2018년부터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고 지속적인 후원과 나눔 활동을 이어왔다. 사업가인 황 씨는 정기후원을 시작한 이후 제주후원회에서 기부와 봉사활동을 하다 지난해 후원회장으로 취임했다. 2017년에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주거취약아동에게 주택을 제공해주는 초록우산의 ‘희망의 둥지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내 이 씨는 둘째 언니가 남편을 잃고 2살, 4살 자녀와 함께 ‘모자원’에서 잠시 생활하던 때 후원자들의 지원이 부모의 몫을 대신하는 것을 보고 결연 후원을 중심으로 나눔을 실천해왔다. 부부는 나란히 초록우산 고액 기부자 모임인 ‘초록우산 그린노블클럽’ 후원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황 씨는 “제주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제주 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며 “추모 기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레 초록우산을 생각했고 실제로 기부한 후원금이 제주 내 저소득 가정 아동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장모님 성함으로 추모 기부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은 추모 기부가 홍보를 통해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 씨는 “추모 기부는 내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일”이라며 “당사자의 이름을 남기는 일이기에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분을 다른 사람과 함께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문화가 기부라는 행위를 넘어 다양한 활동으로 확산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편 황 씨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설 수도 있는 추모 기부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에 참여하는 마중물이 됐으면 좋겠다”며 “추모 기부뿐만 아니라 생전에 기부 활동을 통해 많은 보람과 기쁨을 느낀 분이라면,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를 약속할 수 있는 ‘유산 기부’도 함께 확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부는 마지막으로 나눔의 가치를 평생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난 것에 서로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이 씨는 “남편이 사업가답게 추진력이 좋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하려고 해 못 말릴 때가 많다”면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아빠를 보며 딸이 늘 ‘아빠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며 웃었다. 황 씨는 “봉사든, 단체 활동이든, 부부가 같은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내는 늘 아침에 ‘파이팅’을 외치는데, 덕분에 아침마다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는 제가 기부할 때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너무 감사하고, 또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조율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