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좋아한 尹, 스타일도 닮아가 숙의 과정 없이 일방적 추진 늘 타이밍 못 맞춰 효과도 없어
의대 정원 고수하다가 급변침 플랜 B·C 없어 혼란만 가중 하산 길에는 조력자 더 필요해
김대중과 노무현은 연설 내용과 스타일에서 차이가 크다. 두 대통령 밑에서 연설비서관을 했던 강원국 씨 분석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보다 반 보만 앞서가라’고 했다.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걸 중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합하지 말라’고 했다. 리더는 지지율 떨어질 걸 각오하고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DJ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이상이라도 현실에 적용할 때는 상인처럼 상대방과 거래할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상인이 가격을 고집하면 거래는 되지 않고 결국 망한다. 반면, 노무현은 지지율보다 명분을 더 중요시했다. 그러다 집권 말기에는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자리에서 노무현을 존경한다고 했다. 협상이나 타협보다 밀어붙이고, 안 되면 장렬히 전사하는 노무현과 자신의 상남자 스타일이 맞아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랫동안 20% 초반에 머물러 있는데도 참모들은 별걱정이 없는 모양이다. 한 핵심 참모는 “우리 대통령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상남자 스타일이다. 멋지지 않으냐”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희(一喜)는 없고 일비(一悲)만 계속되는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돈 윤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보면 똑같은 패턴이 읽힌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김태우 공천, 부산엑스포, 김건희 여사 명품백, 한동훈 비대위원장 임명, 이종섭·황상무 사태, 의대 증원…. 이들 사태의 공통점은 ‘숙의 과정 없는 일방적 결정-이의 제기를 반기 또는 배신으로 인식-격노-뒤늦게 태세 전환’이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태우를 무리하게 사면·복권해 다시 선거에 출마시켰지만, 결국 참패했다. 당내에서 공천 불가론이 있었지만 무시했다. 반대하면 화를 냈다. 패배 뒤 왜 진작 안 된다고 건의하지 않았냐고, 또 화를 냈다고 한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문제도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참모에게 격노했다. “무슨 불법이 있었느냐. 피해자 아니냐”고 했다. 어렵게 마련된 KBS 대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다 비판 여론이 거세자 결국 4·10 총선 뒤 기자회견에서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에 대해서도 일부 참모들이 반대했다. 그런데도 급하게 밀어붙였다. 또 “무슨 불법이 있냐”고 했다. 언론인 테러 문제를 언급해 문제가 된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도 마찬가지다. 그런 입장은 불과 며칠 만에 그들의 전격 사퇴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타이밍을 놓치면서 총선에 악영향만 미쳤다.
의대 증원 문제는 더 심하다. 지난 4월 1일 의정 담화를 발표하기 전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2000명을 고집하면 사퇴하겠다”는 강경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직언한 참모들을 배제하고 다른 참모와 연설문을 쓰고 51분 동안 생방송을 했다. 물밑 타협에 나섰던 의사들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번에도 몇 시간 만에 성태윤 정책실장이 TV에 출연해 “2000명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최근 한 대표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중단’ 의견에 대해서도 처음엔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한다. 뒤이은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현장에 한번 가보시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한 대표의 ‘여야의정 협의체’안을 전격 받아들였다.
윤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할 때 다양한 의견을 듣는지 의문이다. 참모가 아닌 누군가 대통령의 소신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거나, 한 대표가 주장하면 되레 거꾸로 가는 경향도 보인다. 이러니 플랜B, 플랜C가 없다. 대통령이 완고하니 참모들은 코드를 맞춘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도 하는데, 윤 대통령은 타이밍을 쇼로 여긴다.
임기가 2년8개월 남았다. 계속 국정을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조롱까지 나돈다. 전문가가 아님을 자각하고 말을 줄이고 귀를 열어야 한다. 보고되는 정보를 ‘크로스 체크’해야 한다. 후반은 전반보다 힘이 더 빠지게 마련이다. 하산 길이 더 위험한 이유다. 그래도 여러 명이 함께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