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집값과 가계부채를 향한 사회적 시선이 싸늘해졌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며 “가계부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90%대 초반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GDP 산출 기준연도가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바뀌면서 분모가 커졌을 뿐인데도 마치 정책 효과처럼 내세웠다가 역풍을 맞았다. 서울 집값도 급등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가 금리를 올려 부채를 감축하는 동안 한국만 가계부채가 늘어났다는 게 문제다.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며 저금리 정책대출을 2년간 100조 원 넘게 풀고, 서민들을 위한답시고 대출금리를 찍어 누른 결과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내수 부진이 문제”라며 ‘고금리’를 원흉으로 지목했다. 대통령실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을 “아쉽다”며 압박했다. 하지만 가계빚 자체가 너무 많다는 본질은 외면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11일 나온 국제결제은행(BIS)의 정례 보고서다. BIS는 부채와 성장이 초기에는 정비례 관계지만 어느 순간 꼭짓점을 찍은 다음부터 반비례로 돌아서 ‘역U자형’ 곡선을 그린다고 분석했다. 그 변곡점에 이른 대표적 나라로 한국과 중국을 지목했다. BIS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쳐 GDP의 100%를 넘을 때부터 성장률이 꺾인다”고 경고했는데, 한국은 그 비율이 이미 222%까지 치솟아 위험수위다. 가계부채가 GDP의 100.5%, 기업부채는 122.3%나 된다.
경제부총리·금융위원장·금융감독원장은 뒤늦게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태세를 전환했다. 하지만 9월 들어 전방위 대출 제한에도 가계대출 열풍은 꺾이지 않고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고 정부가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도 빚 상환 부담 때문에 내수를 살리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한은은 가계빚이 GDP 대비 80% 이하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금리 인하로 주택담보대출이 1% 늘면 집값이 0.7% 상승한다. 로마 전성기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정책을 결정할 때 ‘천천히 서둘러라’를 원칙으로 삼았다. 언제 ‘부채의 역습’이 시작돼도 이상할 게 없는 위험수위다. 가계부채는 고통스럽더라도 꾸준히, 집요하게 줄이는 수밖에 없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