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의 소시지 전문점 ‘용산소세지전문점’의 모둠소시지 메뉴 콜드컷.
경기 고양시의 소시지 전문점 ‘용산소세지전문점’의 모둠소시지 메뉴 콜드컷.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소시지와 맥주

소시지는 독일판 ‘김장’

프랑스 앙두이·이탈리아 페퍼로니…
유럽 전역서 발달한 식량
돼지 간·선지 재료 다양
독일 부어스트는 1500종

맥주 역사 1만년 훌쩍

함무라비 법전에도 언급돼
이집트선 피라미드 인부에
삼시세끼 맥주 지급하기도
한국, 1933년 맥주회사 등장


가을 하면 우리는 송편, 감 등을 떠올리지만 옛날 독일에선 가을이 부어스트(소시지)의 이미지와 직결됐다. 요즘 소시지야 사철 만들지만, 사실 가까운 과거까지 소시지는, 독일에선 우리네 김장처럼 온 이웃이 달려들어 함께 만들던 저장 음식이었다. 그 흔적이 바로 독일 뮌헨(바이에른 주)에서 9월 말~10월 초에 열리는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다. 주민들이 모여 함께 소시지를 만들고 맥주를 마시는 것은 김치를 담그며 수육을 삶아 막걸리를 마시는 김장 풍경과 얼핏 비슷하다. 게다가 소시지와 햄을 잔뜩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우리가 채소를 키울 수 없는 계절을 앞두고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뮌헨 옥토버페스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맥주가 아니라 소시지일지도 모른다.
옥토버페스트는 10월(Oktober) 축제(Fest)란 뜻인데 1810년 바이에른 왕자 루트비히 1세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던 행사에서 비롯했다. 당시 뮌헨 시내 중앙 잔디밭에서 스포츠 대회를 열었고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나머지 이 행사에는 놀이기구, 카니발 등이 추가되며 명실상부한 축제로 200여 년 이상 이어지게 된다. 지금도 옥토버페스트의 메인 행사장은 그 잔디공원이다.

그 기원이야 어쨌든 지금 옥토버페스트에선 ‘소맥’(소시지와 맥주)을 먹는 것이 주된 테마이자 메인 이벤트다. 누구나 맥주 축제로 기억한다.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부터다. 광장에 텐트를 치고 맥주와 함께 소시지, 구운 닭, 족발(슈바이너학세) 등을 팔았다. 나중엔 호프브로이하우스, 뢰벤브로이,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너브로이, 하커프쇼르, 슈파텐브로이 등 뮌헨 소재 양조장들이 직접 판매에 참여하면서 수많은 인파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맥주홀(Bier halle)이 생겨났다. 이후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지금은 브라질 리우 카니발, 이탈리아 베네치아 가면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에 꼽히고 있다.

맥주전문 프랜차이즈 ‘얼맥당’의 얼음생맥주.
맥주전문 프랜차이즈 ‘얼맥당’의 얼음생맥주.


옥토버페스트 축제장 비어텐트에서 파는 맥주는 옥토버페스트 용으로 맞춰 양조한 마스 비어(Maß Bier) 1ℓ 잔만 제공하는데, 사진이나 영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워낙 유명한 축제이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10월에 맥주축제를 열 때 옥토버페스트를 오마주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독일마을이 위치한 경남 남해군에서 10월 초 옥토버페스트란 이름으로 가을 축제를 연다.

이처럼 가을 축제와 함께 진정한 맥주의 계절이 도래했다. 더운 여름철에 맥주를 많이 먹지만 실제 맥주는 홉과 맥아를 거둬들인 여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빚을 수 있다. 보통 홉은 8~9월에 수확하고 맥아(엿기름)는 여름에 거둔 보리알에 싹을 낸 것이다. 그래서 햇맥주를 가을 술이라 하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맥주 역사는 농경 역사보다도 이르다. 무려 1만여 년이 훌쩍 넘어간다. 출토된 맥주 양조장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곳은 1만3700년 전의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BC 1750)에도 맥주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며 BC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대형 양조장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맥주는 주식으로도 쓰인 식품이었다. 빵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곡물을 액체 상태로 발효시킨 것은 맥주, 그것을 구워낸 것은 빵이다. 정책적으로 맥주 양조를 시행했던 고대 이집트의 경우, 피라미드 건설 당시 인부에게 하루 세 번 맥주를 지급했다고 전해진다.

16세기에 의미심장한 법령이 등장한다. 바로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이다. 독일 바이에른공 빌헬름 4세가 내린 칙령인데 이를 토대로 맥주의 제조법이 비로소 표준화, 성문화된다. 칙령은 그동안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맥주를 빚던 것을 규격화했다. 맥주를 양조할 때 물, 보리, 홉을 제외한 다른 재료를 금지한 것. 맥주 순수령은 서남유럽보다 뒤늦게 맥주를 받아들였던 독일이 현대까지도 당당히 ‘맥주 종주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계기가 됐다. 최초의 알코올성 음료인 맥주는 그렇게 인류의 삶 속에 자릴 잡았고, 근대에 들어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맥주의 대중화를 견인한 라거 맥주의 등장이다.

15세기에 처음 등장한 라거(Lager) 맥주는 이름뜻(굴)처럼 기온이 낮은 지하(15도 이하)에서나 양조할 수 있었던 하면발효 방식의 맥주인데 19세기에 들어 효모 연구와 저온 냉장 기술의 개발로 대중화됐다. 라거는 황금색과 맑고 깔끔한 맛에 탄산이 주는 청량감까지 두드러져 당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현재 세계 맥주회사 대부분의 제품군이 라거인 것도 그 영향이다. 물론 상면발효 방식으로 기존 맥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에일(Ale)의 인기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에일은 특유의 다양한 향과 맛을 찾는 이들에게, 라거는 시원한 청량감을 원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라거의 종류에는 대량으로 생산하는 이른바 ‘공장맥주’가 많은 편인데 그래서 한국 역시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자본의 라거로 맥주의 역사를 처음 시작했다. 1933년 ‘조선맥주’와 ‘소화기린맥주’ 회사가 설립되며 라거 병맥주를 한반도에서 최초 생산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민간에 불하해 각각 조선맥주(크라운)와 동양맥주(OB)로 재출발했다가 지금의 하이트맥주와 OB맥주로 이어지게 된다.

맥주 종류와는 무관하게 생맥주냐 병맥주냐를 따지는 이도 많다. 살균을 하지 않고 케그(keg)에 담아 효모가 살아있다고 해서 생맥주(draft beer)다. 하지만 사실 요즘 유통 환경에선 ‘생(生)’은 의미가 없다.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제외하고 생맥주로 유통되는 제품은 대부분 멸균 과정을 거치는 탓이다. 다만 생맥주는 유통과정이 짧아 신선하고 케그에 담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가스를 충전하는 까닭에 청량감이 훨씬 강하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다. 실제로 맥주는 양조장에서 마실 때 훨씬 더 맛이 좋다. 방금 발효를 마친 술이라 신선하다.

대전 은행동의 수제맥주 전문점 ‘두탭스’의 소시지 안주.
대전 은행동의 수제맥주 전문점 ‘두탭스’의 소시지 안주.


맥주와 가장 어울리는 안주를 꼽자면 실로 다양한 답이 돌아온다. 우선 한국인이면 치킨이나 노가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골뱅이도 있고 땅콩도 있다. 감자튀김과 피자 역시 높은 순위다. 서양에선 소시지를 빠뜨리지 않는다. 맥주 정도야 아무런 안줏거리 없이 먹는 경우도 많지만 간단한 식사를 겸할 때는 소시지를 주문한다. 소시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독일에서야 오죽할까.

소시지(sausage)는 각종 육류(특히 돼지고기)를 다져 소금과 후추로 양념한 후 다시 창자 등 케이싱(casing)에 채워 만드는 일종의 ‘순대’ 같은 음식이다. 염장육뿐 아니라 피를 넣기도 하고 기름을 채우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만든 보존식품이다. 실로 번거롭고도 큰일이었다. 가축을 대량 도축한 후 부위별로 말린 고기, 훈제 햄, 베이컨 등을 만든다. 이 작업 이후에야 잡육과 내장, 지방, 선지 등을 모아 창자에 채워 넣은 소시지를 제조한다. 이를 연기나 물에 익힌 후 일 년 내내 먹는다. 이처럼 소시지는 유목민이나 낙농국가의 소중한 식량 자원이었기에 유럽 전역에서 발달했다. 뱅어(영국), 앙두이(프랑스), 살라미, 페퍼로니(이탈리아), 초리소(스페인), 알레이라(포르투갈), 키에우바사(폴란드), 칼바사(러시아), 쿨렌(세르비아), 루칸카(불가리아), 수죽(튀르키예), 수주키(그리스) 등 유럽 전역에는 저마다 다양한 소시지가 있지만 알려지기론 독일의 부어스트(wurst)가 가장 유명하다. 실제로 독일인의 식사 메뉴 중 부어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인당 약 30㎏(연간)으로 상당히 높다.

어디나 있는 음식이지만 독일인의 소시지 사랑은 맥주만큼 지대하다. 독일에는 무려 1500종의 부어스트가 있다. 이 중 특히 부드러운 돼지 간으로 채운 레버부어스트(Leberwurst)와 선지를 넣은 슈바르츠부어스트(schwarzwurst), 커리부어스트(Currywurst) 등이 독일 별미로 꼽힌다. 가장 유명한 것은 브라트부어스트(Bratwurst). 구워서 감자나 자우어크라우트(양배추절임)와 함께 식사로 즐겨 먹는다. 아침 식사로는 흰색의 바이스부어스트(Weisswurst)를 주로 먹는데 이게 바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바이에른 주의 전통음식이다.

‘○○후랑크’하며 한국에 ‘후랑크 소세지’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터(Frankfurter)는 가장 고전적인 부어스트 메뉴다. 고기 씹는 맛이 느껴질 정도로 입자도 굵고 육즙도 풍부해 바비큐 그릴에 많이 쓴다. 위너부어스트(Wienerwurst)는 현지의 소시지가 일본의 가공육 회사를 거쳐 한국에 들어와 ‘비엔나’란 이름을 갖게 된 경우다. 1990년대 ‘줄줄이 비엔나’니 ‘미스터진 비엔나’하며 팔던 짧은 소시지가 그것인데 정작 일본에선 ‘윈나(ウィンナ)’라고 부른다.

특히 독일인의 부어스트 식사 메뉴에 빠질 수 없는 것도 바로 맥주. 기름지고 짭조름한 소시지와 쌉쌀하니 청량한 맥주의 궁합이 딱 맞아 떨어진다. 국내 호프집에서도 어딜 가나 소시지 안주를 내고 있으니 입맛은 상통하는 모양이다. 산업혁명이 식품산업에도 영향을 끼친 19세기 이후 세계 전역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린 독일 출신(?)의 이 두 가지 음식은 지금도 찰떡같은 궁합을 통해 널리 명성을 전파하고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수제맥주 전문점 ‘두탭스’의 수제맥주 샘플러.
수제맥주 전문점 ‘두탭스’의 수제맥주 샘플러.


■ 어디서 맛볼까

◇용산소세지전문점 = 이름은 용산이지만 경기 고양시에 있다. 모둠 콜드컷 소시지. 상호처럼 소시지를 비롯해 다양한 샤퀴테리(염장 육가공품)를 파는 집이다. 소시지 플래터는 다양한 소시지를 썰어내는 서양식 안줏감이다. 식사를 겸한다면 철판 위에 각종 소시지를 내는 매시포테이토 소시지 모둠을, 가벼운 맥주 안주로는 슬라이스한 소시지를 모아놓은 콜드컷이 좋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삼송로185번길 5 1층.

◇엉클조 = 영락없는 독일식 소시지 맥줏집이다. 서울 북창동 길가에 위치한 ‘엉클조’는 독일식 정통 수제 소시지 전문점. 시그니처 메뉴 ‘더운 모둠 소시지’는 절절 끓는 철판 냄비에 모둠 소시지를 올리고 데미그라스 소스를 뿌리는 테이블 위 이벤트를 펼친다. 순간적으로 스팀이 소시지를 익힌다. 껍질은 탱글탱글하고 속은 보드랍기 그지없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62 2층.

◇오뚜기식당 = 요즘 핫하다는 삼각지에, 원래부터 있던 집. 커다란 달걀에 비엔나소시지를 썰어 넣고 부쳐낸 ‘계란소시지’ 메뉴를 판다. 삼겹살부터 찌개류까지 갖은 안주 메뉴를 파는 식당인데 배부른 상태에서 2차로 찾을 때 안주로 훌륭하다. 부드러운 달걀에 짭조름한 비엔나소시지가 씹는 맛과 감칠맛을 담당한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길 18.

◇얼맥당 = ‘얼린 맥주’를 판다는 집이다. 특허기술을 살려 생맥주 위에 우유 빙수 같은 맥주 슬러시를 얹어낸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데 입술을 갖다 대면 더욱 저릿저릿하다. 탄산감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슬러시 양은 3단계 조절이 가능하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길 14.

◇두탭스 = 대전 은행동의 수제맥주 전문점. 맥주 메뉴판이 과장 좀 보태 노래방 책 한 권 수준으로,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판다. 미리 샘플러를 주문해 맛을 보고 원하는 맥주를 고를 수 있다. 안줏거리도 정통 크래프트 맥주 바의 기본에 충실했다. 라거보다는 에일 종류가 많다. 대전 중구 중앙로130번길 37-14.

◇더보헤미아 = 맥주에 관해 독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체코식 맥주 전문점. 필스너 라거를 처음 만든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와 코젤 다크 등 다양한 체코 맥주를 판다. 체코식 족발(콜레뇨)과 굴라시, 소시지, 슈니첼 등 정통 체코식 요리 또한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나길 2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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