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前 산업연구원장

추석 때마다 요란한 민생 경쟁
진부하고 실질 효과도 회의적
野 지역화폐법은 물가苦 악화

성수품 물량 관리는 낡은 방식
일자리와 물가 안정이 최우선
美 연준처럼 정치 압박 견뎌야


추석을 전후해 정치권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민생’일 것이다. 주요 정당들이 민생 챙기기를 내세우며 거리에 나서는가 하면, 정부도 재빠르게 추석맞이 민생 대책을 내놓곤 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생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이다. 아마 정치권도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 듯하긴 하다. 국민의힘은 올해 민생의 주요 이슈로 의료대란 해결, 물가 안정 등을 내세우며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의료계 설득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은 전 국민에게 25만 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내용의 ‘지역화폐법’을 추진하면서 민생을 챙기겠다고 나섰으니, 나름대로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정부도 추석 성수(盛需) 농산품의 추가 물량 공급, 쌀값 및 한우 가격 안정을 위한 각종 행사, 귀성·귀경길 통행료 면제와 같은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한 대책과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에 대한 명절 자금 신규 공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석 민생 안정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일견 정치권이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를 챙기는 듯하다. 그렇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정치권이 일반 국민의 경제생활을 챙기는 뜻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고 만다. 우선, 전 국민에게 돈을 더 나눠주겠다는 이른바 ‘지역화폐법’은 모두가 걱정하는 물가 앙등에 기름을 더 붓는 격으로, 건전한 경제대책과는 거리가 먼, 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서민의 삶에는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게 해서 망외(望外)의 소득이 생겼을 때 많은 사람이 쓸모없는 소비로 낭비해 버렸다는 씁쓸한 경험은 또 한 번 도외시된 것이다.

정부·여당의 민생 대책도 높은 평가를 받긴 어려울 것 같다. 먼저, 이번 추석 민생 대책의 주요 메뉴들은 바로 전 정부가 내놓은 2021년의 추석 민생안정 대책의 ‘판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제16대 성수품 공급 확대, 농수축산물 할인 행사,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취약계층 지원 등의 대책들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식의 물가안정 대책은 낡은 과거 방식의 물량 관리에 의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농축산물 성수품의 공급을 때맞춰 늘린다지만, 그 성수품들이 꼭 이때 동원돼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근본적으로 그 성수품들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결국 농축산인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물량을 비축해 놨다가 추석 때 내놓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정책에 마지못해 순응하는 것인지 어쨌든 시장 논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모 방송국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은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말았다.

진정한 민생경제 대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학에서는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변수가 물가와 일자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즉, 민생 대책은 이 두 변수를 안정화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시중에 돌아가는 돈의 양에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코로나19 시기에 새롭게 주목받은 바와 같이 모든 물품의 ‘공급망’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일자리를 공급하는 원천은 역시 기업들이다. 그러므로 기업들의 경제활동이 부진하면 조금 진작하고, 과도하면 조금 억제하는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일자리 대책이다.

이렇게 근본으로 돌아가 보면, 가장 민생경제 대책을 잘하고 있는 곳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떤 정치적 압박도 견뎌내면서 물가와 일자리 변수에만 초점을 맞춘 채 꿋꿋하게 금리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면, 그 수장을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장 원리가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는 미국 경제와는 아직 거리가 먼 우리나라로서는 정부 재정의 역할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통화 당국의 ‘경제 안정화’ 기조를 존중하는 한편, 물량 위주의 관리는 줄여 나가는 것이 올바른 민생 대책이 아닐까 싶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前 산업연구원장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前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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