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84) 하원의원은 “가정주부에서 하원의원, 그리고 하원의장이 됐다”는 말을 자주한다고 한다. 가정주부·하원의원·하원의장이 모두 ‘하우스(house)’로 시작한다는 데서 착안한 농담인 동시에 다섯 아이를 키운 전업주부 출신 하원의장이라는 독특한 정치 인생을 압축한 표현이다. 미 주간지 뉴요커는 펠로시를 ‘의회 역사상 설득력이 가장 뛰어난 정치인’으로 꼽았다. 1950년대 상원의원 시절 ‘상원의 대가(master of Senate)’로 통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에 비견된다는 평가다. 펠로시가 2023년 1월 하원의장에서 물러날 때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공화당은 반대만 하지 말고 펠로시의 효과적 권력 행사법을 배워야 한다’고 썼다.
펠로시는 지난 8월 펴낸 자서전 ‘권력의 기술(Art of Power)’에서 자신의 정치 비결을 털어놨다. 그는 자서전 출간 후 언론 인터뷰에서 “하원의원 생활 30여 년간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당면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과 리더십을 익혔다”고 했다. 그는 “정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두 요소는 정치권 내부의 치열한 이견 조율 노력과 유권자들의 장외 압박”이라고 했다. 펠로시는 정치 원칙과 관련해 “유권자를 존중하고,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데서 내 정치는 시작됐다”면서 ‘정치의 3 No 원칙’을 소개했다. 첫째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둘째 어떤 정치 자원도 과소평가하지 말 것, 셋째 선거 패배 후 후회하지 말 것 등이다. 세 원칙을 견지하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역동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펠로시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토론에서 바이든이 완패하자 후보 사퇴론을 띄운 뒤 여론을 움직여 관철시켰다. 바이든이 버티면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길을 열게 되고 민주당은 상·하원을 모두 잃게 될 수 있다는 설득이 주효했다. 이 과정에서 펠로시는 바이든의 입장을 존중하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펠로시의 정치적 설득술 덕분에 ‘대선 후보 축출 쿠데타’가 성공한 셈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아마도 1등 공신은 펠로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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