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합니다 - 나의 아빠 故 백현옥 조각가(인하대 명예교수·1939~2024) <상>
아빠! 이 나이가 되도록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사랑하는 나의 아빠는 얼마 전 작고하신 고 백현옥 조각가이시다. 아빠는 인하대 조형예술학과 명예교수이시며, 한국 구상조각의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시다. 대표작으로 천안 망향의 동산 내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희생자 위령탑, 풍산공원 내 괌 대한항공 여객기 희생자 위령탑, 김환태 문학 기념비, 인하대 비룡탑 등 수많은 모뉴먼트와 환경조각을 남기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김종영 미술관, 김세중 미술관, 모란미술관, 신라호텔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아빠의 작품은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따뜻한 정서적 조형성이 돋보이며,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수직선과 수평선 등 상반되면서도 공존하는 개념이 내재한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작년 마지막 전시가 된 모란미술관 초대전에도 아크릴과 LED 조명을 이용한 새로운 설치작업을 선보이실 정도로 일생을 통해 다양한 재료를 섭렵하며 창작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으셨다.
미술계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서울조각회 회장, 춘천 MBC 한국현대조각 초대전 운영위원장, 김종영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추천작가 등을 역임했다. 활발한 작품 및 교육활동으로 근정포장, 제23회·제2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공부장관상,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 김세중조각상 등을 받으셨다.
이렇게 훌륭하신 아빠인데 나는 존경하는 마음 한번 진중하게 못 전해드렸다. 막내딸로 태어나 모든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평생을 버릇없는 딸로만 지냈는데, 언젠가 철이 들면 아버지라고도 부르고 효도도 할 줄 알았는데, 이미 시간은 다 가버리고 없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소천을 나는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는 가락도 모르는데 그 제목만으로도 가슴에 너무 와 닿는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1월 뇌경색으로 입원하시고 점차 회복하시는 듯하다가 지난 한두 달간은 회복의 기미가 점점 사라져 갔는데, 이제 와서 갑작스러운 죽음이라고 우기는 게 말이 되나 싶다. 하지만, 어쩌면 점점 아빠의 삶이 희미해지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못했고, 정말로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실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직도 특유의 순수하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만 같다.
1939년 충청도 장항에서 태어나 전쟁의 포화 후에 온 나라가 궁핍하던 1958년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하시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시며 지난한 대학 시절을 보내셨다는 아빠의 이야기가 언뜻 생각난다. 아빠가 옛날이야기를 할 적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게 한이 된다. 평생을 아빠와 딸로 나름 가까이 지냈는데, 막상 추모 글을 쓰려고 하니 아빠의 인생에 대해 나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삼성동 지하 작업실에서 후배, 제자들과 항상 북적거리며 왕성하게 환경조각을 하시던 내 초등학교 시절부터가 그나마 또렷하다. 아빠는 늘 조각에 열정적이셨고, 구상 조각에 있어서는 단연코 천재적이셨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손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셨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 머릿속에 있거나 눈으로 보면 바로 점토든 나무든 돌이든 조물조물 만져 완벽한 형상을 만들어 내셨기 때문이다. 그런 경이로운 장면들이 아직도 수없이 뇌리에 남아있어, 아빠가 연로해지실수록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 손이 늙는 게 너무 아쉽다는 얘기를 나도 엄마도 많이 했었다.
이후 여주 작업실을 거쳐 남양주 수동면에 작업의 터를 잡으시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방학을 아빠의 시골 작업실에서 보냈다. 물을 좋아하던 아빠의 작업실은 늘 물가에 있었고, 여름이면 물놀이, 겨울이면 눈과 얼음에 파묻혀 놀곤 했다. 작업과 강의로 바쁜 나날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여름엔 모터보트를 만들어주셨고, 겨울에는 썰매를 만들어주셨다. 삼 남매인 우리가 각자의 가정이 생긴 후엔 어김없이 명절이나 방학이면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작업실을 찾아 추억을 쌓았다. 유난히 아이들을 사랑했던 아빠는 손주들에게 주는 세뱃돈 봉투에도 늘 그 해를 상징하는 창의적인 그림을 각각 다르게 그려서 건네주셨고, 점토나 석고, 물감을 늘 준비해두시고 아이들과 뭔가를 만들며 놀아주셨다. 이런 마음들은 어김없이 아빠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군상에 유독 가족이 많고, 우리 삼 남매를 비롯해 아이들의 모습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쏟아지던 별빛, 끊이지 않던 이야기와 웃음소리, 난로에서 익어가는 군고구마 냄새, 솥뚜껑에서 구워지는 삼겹살과 새우 냄새, 늘 벅적거리던 손님들. 아빠가 나의 유년에, 내 아이들의 유년에 남긴 큰 선물이다.
막내딸 백승주 (캔델라 건축조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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