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수준 도달한 의회 불신 자기 지역 선출 의원도 안 믿어 맹목적 신뢰 또는 극혐 양극화
다수당 폭주와 거부권 쳇바퀴 근본 문제는 정책 능력 밑바닥 정치의 사회적 기능 상실 위기
지난 추석 연휴 직후 여러 언론 매체에서 국회의 신뢰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거의 최하위라는 소식을 전했다. 국회 신뢰도(20%)와 정당 신뢰도(19%)는 국내의 여타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가장 나쁘다는 조사 결과도 함께 전했다. 지난 7월에 이미 발표된 내용이라 따끈한 뉴스거리는 아니었지만, 현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민심이 추석 밥상에서 확인됨에 따라 새삼 이목을 끈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기관은 그러지 않는 기관보다 국민의 신뢰를 더 받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 구성되는 의회가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낮은 국민 신뢰를 받는다. 이는 의회 불신의 역설로 불린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처럼 견제받지 않는 권력자가 좋은 정치를 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예방주사와 같은 필요악인 ‘정치 불신’을 전제해 디자인한 정치제도가 바로 민주주의다. 불신 메커니즘을 통해 의회를 감시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기관 신뢰도의 국제적 조사에서는 의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민주국가에서 잘 관찰되는 반면,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서는 의회를 비롯한 권력기관이 오히려 더 신뢰받는 것으로 집계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 의회는 민주적 헌정 제도로 평가받았다. 1960∼1961년 우리나라의 제2공화국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의회 민주주의가 헌법적으로, 또 규범적으로 잘 디자인돼 있다고 해서 국민 신뢰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제2공화국 국회와 바이마르공화국 의회 모두 당시 국민의 큰 불신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작금 우리나라의 정치 불신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 정도가 선진 민주국가보다 더 심하다.
선진 민주국가의 국민은 의회를 불신하더라도 자기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원을 대체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른바 ‘페노(Fenno)의 역설’이다. 의원들도 자신이 속한 의회를 비판하면서 의회 전체와의 차별화를 모색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는 국회 전체에 대한 신뢰도만큼이나 나쁘게 나온다. 국회나 국회의원 불신의 이유로는 당리당략(黨利黨略)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정당의 후보 공천 결과에 대한 일반 국민의 만족도도 나쁜 것으로 나온다. 정치 진영화는 불량 정치인의 국회 진출 길을 더 키운다.
오늘날 정치권 일반에 대한 국민 인식은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공유적이나, 같은 정치인을 두고서도 맹목(盲目)적 신뢰와 극혐(極嫌)의 불신이 혼재한다. 극단적 인식은 학력(學歷)과 상관없고 대신 논리적 사고의 결핍에서 나오는 경로를 보인다. 국회의원 역시 스스로 국민의 대표라고 강조하면서 의정 활동을 하지만, 보편적 국민 가치에 따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진영만 바라보고 언행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적 양극화는 비토크라시(발목잡기 정치)로 전개된다. 국회 다수당의 독단, 그리고 대통령의 거부라는 쳇바퀴 반복이 그 대표적 현상이다. 의정이나 국정이 교착돼 전혀 생산적이지 않더라도 자기 진영의 지지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한다.
유권자는 자신이 신뢰하는 정치인의 우호 세력을 신뢰하는 반면, 경쟁 세력에 대해서는 불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흔히 신뢰 관계의 구조균형(structual balance)이라고 한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서 대통령 지지층은 대통령과 대립하는 의회를 불신하는 반면, 대통령에 비판적인 계층은 의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당 지지층의 국회 불신 비율이 과소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의 국회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울러 신뢰와 불신은 상대의 의도적 측면과 능력적 측면으로 구성되는데, 진영 간 대결 상황에서 같은 편이면 무조건 신뢰하는 의도적 측면을 빼고 나면, 정치권의 정책 능력은 역대 최악의 불신을 받는 셈이다.
신뢰는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정치가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하려면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제고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감각적 집단 정체성보다 이성 및 논리에 더 의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