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알고리즘이 바둑을 띄워줄 때가 있다.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는 반상의 기보(棋譜)가 한 폭의 모자이크 추상화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포석과 행마에 담긴 서사의 심오함을 읽어낼 경지는 아니지만, 어떤 제국의 흥망성쇠가 담긴 대하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점 하나의 무게와 위력 앞에 경건해지기도 하다.
김주환의 매우 특이한 작업 ‘유목과 은둔의 집’과 마주했다. 여기서 ‘하찮은 것’들의 구조화와 그 힘을 절감한다. 전시장은 거대한 백색의 마천루 혹은 신상 같은 것들이 신기루를 이루는 곳이다. 장막 안에는 숙연해지는 신성의 공기가 감돌지만, 가까이서 그 실체를 알고 나면 무언가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 구조물들은 피자 박스의 높이를 지탱해주는 세이버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유목하듯 현장에서 조립되는 이것들이 분리수거도 마땅치 않은, 하찮은 오브제라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정교하게 가공, 금형으로 사출된 것들로서, 피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한다. 우리 문명의 허장성세를 상징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