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의 발달로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경로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알려준 경로를 따라 운전하다가 복잡한 갈림길을 만났을 때, 엉뚱한 길을 골라 고생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복잡한 갈림길마다 여러 색으로 도로 유도선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이 내가 가려는 방향의 유도선 색을 알려 줘 더는 헤매지 않고 운전할 수 있다.
법령에서 일정한 사항을 지방자치단체의 자치법규로 정하도록 규정하면, 지자체는 반드시 해당 사항을 자치법규로 입안해야 한다. 이때, 정부 각 부처에서는 지자체가 조례와 규칙을 더 쉽게 입안할 수 있도록 ‘유도선’ 역할을 하는 ‘참고 자치법규안(案)’을 만들어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잘못된 도로 유도선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결과가 생기듯이, 참고 자치법규안이 상위 법령에 위배되거나 체계적이지 않다면 지자체가 조례·규칙을 입안하는데 혼선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정부 각 부처는 상위 법령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체계적인 참고 자치법규안을 만들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법제처는 이러한 정부 각 부처의 노력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참고 자치법규안 자문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정부 각 부처에서 법제처에 참고 자치법규안의 자문을 요청하면, 법제처는 상위 법령 위반 여부와 조문 체계, 용어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의견을 요청한 기관에 제시한다. 그러면 부처에서는 법제처의 검토 의견을 참조한 참고 자치법규안을 수정해 지자체에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역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순찰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 조직인 자율방범대에 지자체가 경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자율방범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세부 지원 절차를 조례로 정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경찰청은 해당 조례에 대한 참고 자치법규안을 마련하면서 법제처에 검토를 요청했다.
법제처는 자율방범대가 지자체에 경비 지원을 요청할 때 사용할 신청 서식을 참고 자치법규안에 마련한다면 자율방범대와 지자체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경찰청에 전달했다. 경찰청은 법제처의 검토 의견을 반영한 참고 자치법규안을 마련해 지자체에 지원했고, 여러 지자체에서는 해당 참고 자치법규안에 따라 지원비 신청 서식이 포함된 자치법규를 제정해 자율방범대에 대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 옥외광고물법령에서 옥외광고물의 허가나 신청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했고, 행정안전부에서 허가나 신고의 심의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도록 참고 자치법규안을 만들자, 법제처는 ‘허가나 신고 수리를 할 권한이 없는 자문기관인 옥외광고심의위의 심의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 규정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해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그 밖에 법제처는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 참고조례안에서 빈집정비 사업을 시행할 때 용적률 기준을 완화해서 적용받기 위해 건설해야 하는 임대주택의 비율을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제안하는 등 실제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정부 각 부처를 돕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목표로 자치입법권을 강화하는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령에서 자치법규에 위임하는 사항도 늘어 참고 자치법규안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제처는 앞으로도 지자체가 자치법규를 마련할 때, 참고 자치법규안이 올바른 ‘입법유도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앙행정기관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