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신해철 ‘길 위에서’

역에 있는 그 빵집은 언제나 줄이 길다. 그 줄에 서서 빵을 기다리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아슬아슬함을 즐기다가 열차를 놓칠 수 있어서다. 창밖에 펼쳐지는 계절의 향기, 맛있는 튀김 곰보빵과 함께 커피 한잔의 별미를 누리는 상상을 하다가 결국은 시간에 쫓겨 뒷사람 좋은 일(본의 아닌 양보) 시키고 승강장을 향해 냅다 달린 기억이 아련하다.

줄이 길면 뭔가 있는 게 확실하다. 내가 지금도 받는 질문 중에 교사 생활하다가 왜 PD가 됐느냐는 문항이 있다. 간단히 답하면 그날 내 앞에 ‘줄이 길어서’다. 휴가 나와서 시내를 걷다가 길 건너 어느 건물 앞에 긴 줄이 형성돼 있는 걸 보았다. 젊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다 뭔가를 받아 가니 말년병장도 길 건너서 그 줄에 끼고 싶어진 거다. 문제의 건물은 방송사였고 입사 요강에 포함된 시험과목이 왠지 자신 있어 보여서 덜컥 지원했다. 이게 수십 년 반복되는 나의 직업전환 레퍼토리다.

줄이 길다는 건 인기도 있고 위기도 있다는 거다. 친했던 두 사람이 헤어졌는데 각자의 말이 다르다. 그 문장 안에 길은 없고 줄은 있다. 한 사람은 그럴 ‘줄’ 알았다 하고 다른 사람은 그럴 ‘줄’ 몰랐다고 한다. 서로 기대하는 줄이 달랐던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럴 줄 알았던 사람은 애초에 사랑이 없었던 거고 그럴 줄 몰랐던 사람은 지혜가 부족했던 거다. 길게 보면 줄은 결국 줄게 돼 있다. (길은 길어서 길, 줄은 줄어서 줄이다)

음악동네에도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오늘은 같은 제목(‘길 위에서’)의 두 노래를 들어본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신해철 ‘길 위에서’)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중략)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 바람만 스쳐 가네’(최백호 ‘길 위에서’)

10월이면 신해철(1968∼2014)의 10주기다. ‘먼 산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1994 YB 1집 ‘너를 보내고’) 내가 대학생 프로를 연출할 때 신해철은 철학과 신입생이었다. 뭘 좋아하는진 몰라도 뭘 싫어하는진 분명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 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신해철 ‘길 위에서’)

단체대화방엔 생일 축하 인사가 수없이 올라온다. 미풍양속이다. 지난번엔 내가 이런 말을 올렸다.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념하면서 동시에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돌아보는 날이라면 그 또한 의미 있을 것 같다.’ ‘언제’는 역사지만 ‘왜’는 철학이다. 왜 사는가. 내가 즐겨 찾는 시인이 조용히 답한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윤동주 ‘길’)

빵 먹으려고 열차 몇 번 놓쳐도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1943·생텍쥐페리)의 지적대로 급행열차에 올라타면서 자기가 무엇을 찾으러 떠나는지 모른다면 그건 문제다. 젊어서 떠났기에 영원히 젊은 신해철은 고백한다.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9월을 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9월을 보내는 게 아니라 9월이 우리를 보내는 거다. 사람들은 끝까지 갈 줄 알지만 대부분 길 끝에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 죽는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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