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의리 이젠 정적 혼돈 지경 권력 유지와 차별화 본능 충돌 정권 재창출 경험칙 안 통할 판
尹은 민의와 당 통제 오판 말고 韓은 김 여사 블랙홀 역지사지 자충수 없어야 후반 국정 동력
참 박절(迫切)한 사이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동일체와 규율이 강조되는 집단에서 20여 년 다져진 의리 관계였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 출발점에 함께 선 지 2년5개월 지난 지금은 피아 구분이 안 되는 지경이다. 지난 24일 만찬, 독대 불발이 보여준 모습이다.
윤 대통령 대선 출마 선언을 시점으로 정치 경력이 3년2개월 남짓하다. 한 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 시절부터 따지면 9개월가량이다. 역대 정권 중 가장 짧은 정치 경력의 당·대 관계다. 관록과 정치력이 비례 관계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한들 탈(脫)청와대, 탈여의도의 신선한 정치 문법을 보여줬다면 ‘권위적 대통령’ ‘여의도 사투리에 당한 당 대표’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상식적인 정서와 표현 대신 거친 말과 감정 표출이 앞섰다. 친윤-친한 진영까지 불신의 신호들이 거침없이 표출된다. “뺨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 “참으로 속 좁고 교활”. 언론에 쏴붙인 게 이 정도이니, 사석에선 얼마나 원색적인 비방전이 난무하고 있겠는가.
물론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권력 지향이 나란히 가는 직선도로가 아니다. 정권 재창출이란 이정표를 찾아가도 방식이 달라 곳곳에 교차로가 놓여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여당 대표가 차기 대선 주자라면 더 많은 갈림길과 이면도로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은 권력 유지의 선천적 본능, 여당 대표는 차별화의 후천적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의 조합도 그 파란을 겪었다. 정해진 성공의 공식은 없다. 공멸 위기의 앞에 서서야 양보의 대타협이 가능했다는 경험칙뿐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보여주는 갈등 전개 과정은 그 경험칙조차 무용일 것 같은 수위다. 김건희 여사 문제가 빅뱅의 뇌관이다.
윤 대통령은 오는 11월이면 임기 반환점을 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2028년 5월까지로, 1년 앞서 퇴임하는 윤 대통령은 그들의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친윤도 오랜 정치 여정 속에 위계가 형성돼 있는 계보와 다르다. 현 정부 출범 후 여당의 수장이 8번이나 바뀌었는데, ‘1호 당원’의 위세와 집권당 통제력은 거기까지다. 레임덕은 잔여 임기와 큰 상관성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둔 2016년 4월 총선 패배 때부터 레임덕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탄핵 수모를 겪은 배경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은 “인기가 없어도”라며 개혁을 강조하지만, 여당보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이 여당을 도외시한 채 여론 동력에 기대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한 대표의 경우, 대권 가도에 들어섰다고 치면 중반전인데 그만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여당의 어려운 상황에 윤 대통령 탓이 크다고 생각하는 측면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불화의 시작과 끝이 김 여사라는 것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김 여사와 거리 두기 실패가 고착된 상수 같다면, 뇌관을 해체할 적임자는 그 관계를 가장 잘 아는 20여 년 동반의 한 대표밖에 없다. 김 여사의 공개 사과 요구 등에서 보여온 한 대표의 방식은, 너무나 상투적인 여론 앞세우기였다. 채상병특검법 대응도, 김경수 복권 반대 문제도 그러했다.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 가장 남처럼 들이대면, 그보다 화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진정성 없이 다른 속내로만 보일 건 당연하지 않은가. ‘국민 눈높이’도 도그마가 돼선 안 된다. 그 방식으론 김영삼-이회창, 노무현-정동영, 박근혜-김무성이 실패한 길을 다시 밟게 된다.
두 사람의 정치 입문 출사표를 다시 읽었다. “상식을 무기로, 공정의 가치를 다시 세워 정의로움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 하겠다.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소수당이지만 대통령을 보유한, 정책의 집행을 맡은 정부·여당이다.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이 국민 지지를 만날 때 국민 삶이 좋아진다.”(2023년 12월 비상대책위원장 취임사) 당·대 관계의 기로다. 삐걱만 해도 수렁에 빠질 듯한 긴장이 휘감고 있다. 권력 내부의 분화는 지지층의 분열이다. 서로 역지사지해야 한다. 오판으로, 못난 여권 탓에 잘못한 야당 문책이 묻혀버리는 자충수를 더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