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헤셤’.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을 바꾼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섬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기억하는 것은 고사하고 들어본 적도 없을 것 같다. 힌트를 드리면,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의 실권자 최영을 몰아내고 새로운 실권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 섬이다. 이쯤 되면 ‘그 사건, 위화도회군 아냐?’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맞다. 다만, ‘용비어천가’(1447)는 그 사건이 일어난 섬의 이름을 한글로 위화도가 아니라 울헤셤으로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한글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책은 1446년에 한글의 조형 원리를 한문으로 설명하면서 한글의 사례를 넣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그다음으로 오래된 책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와 4대 선조 그리고 아들 태종 등 6대의 행적을 서사시로 노래한 ‘용비어천가’다. 이 책은 먼저 한자어는 한자로, 우리말은 한글로 본문을 썼다. 다음으로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한자 본문과 주석도 함께 달아 줬는데, 표기된 한자 지명의 소리와 부르던 우리말 지명의 소리가 달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여 우리나라 지명 84개에 대해 ‘한자한글’을 병기했다. 그중의 하나가 ‘威化島울헤셤’이다.
울헤셤을 한자의 비슷한 소리인 威化(위화)와 島(섬 도)의 뜻을 빌려 표기한 것이 威化島다. 이성계의 회군 사건은 너무나 중요하고 많이 회자됐기 때문에 임금과 고위 관료들까지도 당시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부르던 울헤셤으로 불렀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威化島의 소리 위화도라고 말하면 의사소통이 어려울 것을 염려해 ‘용비어천가’ 편찬자는 한자 威化島와 한글 울헤셤을 병기해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울헤셤 또는 울헤셤회군이라 말하면 오히려 의사소통이 안 된다. 한자 지명과 우리말 지명의 한글을 병기한 ‘용비어천가’ 편찬자의 고민이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이 아쉽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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