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본다’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10월 16일에 치러지는 영광·곡성 군수 재선거를 앞두고 야당들이 보여주는 ‘명예훼손 고발’과 ‘호남에 고인 물’‘더 상한 물’ 설전을 떠올리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이번에 호남에서 치러지는 재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혈투를 벌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두 정당의 대표 모두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차원에서, 이번 호남 지역 두 군수 재선거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도 이해한다. 민주당이 자신의 텃밭에서 패배하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 체제는 흔들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고, 조국 대표 역시 호남에서 ‘인정’을 받아야만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자신이 만든 정당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려고 하는 것’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것은 다른 사안이다. 민주사회에서는 ‘과정의 정통성’이 ‘결과의 정통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전남 영광·곡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이런 과정의 정통성을 알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지역 예산을 절약해 100만 원씩 주민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조국혁신당은 100만∼120만 원의 행복지원금을 일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가 “영광군은 원전 지역자원시설세가 지원돼 세수(稅收)가 많은 자치단체”라며 이를 활용해 농민 기본소득 정책 등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탈원전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정당이 민주당이다. 그런 민주당이 ‘원전’에서 나오는 세금을 이용해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혹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영광군의 재정자립도는 11.7%, 곡성군은 9.3%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기본소득이나 지원금으로 전용하면, 이 때문에 모자라는 예산은 다른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국민 대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이런 퍼주기 식 공약의 문제점은 또 있다. 양당은 도대체 재선거 지역 주민들의 민도(民度)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부분이다. 즉, 퍼주기 공약을 내세우면 군민들이 ‘혹할’ 것으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양당이 이런 식의 생각을 한다면, 이는 해당 지역민들을 모욕하는 것일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퍼주기 공약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선거의 본래적 의미를 왜곡하고 망가뜨린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돈을 뿌리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과정’을 완전히 망치는 일이다. 본래 선거는, 미래 비전과 타 후보와의 정책적 차별성을 가지고 민심의 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되는 부분은, 이런 식으로 선거를 치르는 정당들이 지방선거와 대선에도 참여할 것이란 점이다. 군수 선거에서도 이런 식인데, 지방선거나 대선에선 더 큰 ‘액수’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고, 결국 민주주의와 국가 재정을 완전히 망칠 수 있다.
이런 정당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검찰 독재를 주장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외치려면, 먼저 자신들부터 민주주의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