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루슈디. ⓒRachel Eliza Griffiths
살만 루슈디. ⓒRachel Eliza Griffiths


"저는 ‘나이프’가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 말입니다."

지난 2022년 8월 12일 뉴욕에서 열린 강연 자리에서 흉기를 든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한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암살범의 칼은 무차별적으로 그의 육체를 파괴해 팔 신경이 절단되고 간에 손상을 입었으며 오른쪽 눈은 결국 실명에 이르렀다.

루슈디가 1988년 펴낸 소설 ‘악마의 시’는 그에게 여러 문학상 수상을 비롯 ‘표현의 자유를 가장 열렬히 수호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란의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루슈디의 살해를 지시하는 ‘파트와’(이슬람법에 의거한 종교적 칙령)를 내리도록 만든 작품이기도 했다. 살해 위협 끝의 망명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루슈디를 멈춰 세운 사람이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은 20대 청년이었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번에도 루슈디는 문학을 놓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등을 오가며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과 지난한 재활 과정을 거쳐 다시 한 번 펜을 들었다. 그는 펜을 쥐고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보내는 15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썼다고 밝혔다. 그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지난 삶과 문학, 피습 이후 생의 불씨를 지켜준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마침내 가해자의 목소리까지 담아내는 회고록을 지난 4월 영문으로 먼저 출간했다. 한국어 번역판 ‘나이프’(문학동네)도 오는 4일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회고록에는 파트와로 대표되는 혐오의 계보가 유튜브 등의 소셜 미디어로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담겼다. 또한 언제든 검색 엔진을 통해 수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적고 편향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실을 아프게 기록했다. 루슈디는 문화일보를 비롯한 한국 언론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혐오는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혐오가 승리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아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은)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생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루슈디는 "이번 책을 집필하며 이 서사(피습)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삶의 문제를 문학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자신의 존재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작품 속에서 A로 지칭되는 가해자와 상상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6장), 만일 법정에 함께 서게 된다면 그에게 해야 할 말 등을 상세히 서술하는 장면(8장) 등을 통해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작가는 "그를 ‘나의’ 등장인물로 만들었다"며 "이젠 그가 내 것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회고록이 잔혹한 암살 시도와 고통스러운 재활의 과정 등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면면에는 시인이자 그의 아내인 일라이자 그리피스를 포함해 주변인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배어 있다. 또한 작가는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채 곳곳에서 ‘피해자답지 않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는 "독자로서 유머와 재치가 전혀 없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집필에서) 중요한 건 범죄에 대한 진술만이 아니라 문학적 텍스트로서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글을 쓰는 것"이라고 유쾌한 답변을 이어 갔다. 또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며 독자들을 향한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문학은 인류에게 인류의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이자,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유산입니다. 문학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릴 수 있는 최고의 초상이죠."

장상민 기자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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